농난청인(Deaf and Hard of Hearing), 특히 한국수어가 아닌 한국어를 일상어로 사용하는 난청인의 실질적인 소통을 위해 문자통역 서비스를 만들어온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 그 중심에는 창립자이자 상임이사인 박원진 펠로우가 있습니다. 브라이언 펠로우 시즌4로 선정된 후 1년 반, 에이유디는 어떤 변화의 길을 걸어왔을까요? 박원진 펠로우의 난청인으로서의 이야기부터 조직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고민, 그리고 새로운 세대의 농난청인을 위한 ‘에이유디 펠로우십’까지, 조용하지만 깊은 전환의 시간을 함게 들여다보았습니다.
정신없이 지냈죠. 1년 반의 시간 동안 개인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특히 작년 겨울에 인공와우 수술을 받은 것이 가장 큰 변화예요. 이제 세상의 소리들이 보다 더 선명하게 들리긴 하지만, 이에 맞춰서 준비해야 할 것도 많아요. ‘들을 수는 있지만, 알아듣지는 못하는’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매일 뉴스를 듣고 말소리를 변별하는 연습을 하고 있답니다. 제가 아는 단어와 말소리를 연결 짓는 게 가장 어려운 숙제죠.
하지만 당연히 좋은 점도 많아요. 예전에는 엘리베이터가 만원일 때 나는 ‘삐빅’ 소리를 못 들어서 항상 눈치껏 내려야 했거든요. 근데 이제는 그 소리가 조금씩 들리니 훨씬 수월해졌어요. 수술 이후에 감각이 달라지면서, 일상 자체를 다시 배우는 느낌이에요. 여전히 문자통역에 많이 의존하지만, 소리를 인식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의 질이 달라지던데요?
일단 에이유디에 대해 다시 소개해 드릴게요! 에이유디는 ‘말을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조직이에요. 농난청인을 위한 실시간 문자통역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요. 회의나 강의, 병원, 공공기관 같은 곳에서 누군가의 말을 실시간으로 자막처럼 띄워주는 거죠.
청각장애라고 하면 대부분 수어를 떠올리지만, 사실 한국어가 일상어인 난청인이나 청력을 조금이라도 가진 사람들은 수어보다는 문자에 더 익숙해요. 에이유디는 이처럼 수어 외의 방식으로 소통하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요. 직접 문자통역 플랫폼도 개발하고, 빠르고 정확한 문자통역사도 발굴하죠. 특히 요즘엔 AI 기술이 날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그걸 활용한 실험도 해보고 있어요. Google Meet의 자막 기능을 이용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죠. 다만 뉘앙스나 전문 용어, 문맥에 맞춘 번역은 여전히 사람의 손이 필요하기 때문에, 저희는 기술과 사람의 힘을 적절히 섞는 방식으로 더 고민하고 있답니다.
제 머릿속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항상 ‘농난청인 인식 확산’이에요.
그 외에는 에이유디가 작년에 10주년을 맞이했거든요. 조직이 점점 커지면서 다양한 시스템을 정비하며 에이유디 자체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꾸준히 고민하기도 하고, 에이유디 펠로우십이나 ‘소통이 흐르는 밤’처럼 다양한 경험을 함께 나누는 프로그램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어요.
에이유디 펠로우십은 농난청인 체인지메이커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펠로우십 프로그램이에요. 농난청 당사자인 청년들이 자신의 프로젝트나 활동을 시도해볼 수 있도록 돕는 취지에서 시작했어요. 선정되면 1년 간 활동비뿐만 아니라 문자통역도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어요. 소통의 어려움 없이 본인의 이야기를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거든요.
이런 펠로우십 프로그램은 브라이언 펠로우로 활동하면서 얻은 좋은 경험에서 비롯됐어요. ‘나도 누군가의 응원을 받았듯이, 이제는 내가 응원할 차례’라고 생각했죠. 저도 누군가의 지원을 받았던 성공의 경험이 다음 단계에서 무엇인가를 도전할 때 큰 지지가 되어주었거든요. 에이유디 펠로우십을 통해 작은 성공의 경험을 보여준 펠로우들이, 언젠가는 다시 사회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요.
브라이언 펠로우가 된 덕분에 외부의 신뢰도 생기고, 자원도 조금 더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죠. ‘모금함’이라는 형태로 카카오같이가치 플랫폼에서 에이유디를 소개하고, 후원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좋은 경험이었어요. 단순한 재정적 지원을 넘어서, 우리가 해온 일에 공감하고 함께하겠다는 사회적 지지를 확인했거든요.
뿐만 아니라,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회혁신가들과 연결될 수 있다는 점도 매우 크게 다가왔어요. 우연히 마주치는 펠로우들과 “요즘 어때요?”하며 나누는 대회가 큰 자극이 되었거든요. 이름만 아는 사이가 아니라, 같이 방향을 고민하는 동료들이 생긴거죠. 조직을 키우는 일은 항상 외로운 작업이라 생각했는데, 그 외로움이 줄어들었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와닿더라고요.
저는 항상 문자통역이 기본값이 되는 사회를 꿈꿔요. 지금도 공공기관이나 대규모 행사에서 수어통역은 거의 필수처럼 자리 잡았지만, 문자통역은 아직 선택 사항에 불과하거든요. 수어통역은 지방자치단체마다 조례도 잘 마련되어 있고, 그를 바탕으로 예산 지원도 어느 정도 체계화되어 있는 편이에요. 반면, 난청인을 위한 문자통역은 아직까지 제도적 기반이 거의 없다시피 해요. 관련 조례를 찾아보기도 어렵고, 현장에서는 문자통역이 필요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김포공항이나 서울역에 설치된 TV에 실시간 자막을 띄우는 건 사실 지금도 리모콘 버튼 하나만 누르면 돼요. 기술적으로는 이미 충분히 가능한 일인데, 인식과 제도가 아직 따라오지 못하는 거죠.
그리고 이건 단지 농난청인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노년층, 외국인, 일시적으로 청력이 약한 분들까지 누구나 편리하게 정보를 받아야 하잖아요. 문자통역이 모두를 위한 서비스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으면 좋겠어요. 에이유디는 그걸 위해 계속 걸어갈 거고요.
박원진 펠로우는 문자통역이라는 기술을 단순한 서비스가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의 삶을 바꾸는 통로로 만듭니다. 농난청인의 정보접근권을 확장하고, 일상의 소통을 더 평등하고 쉽게 만드는 일은 여전히 갈 길이 멀지만, 그 길을 차분히 걸어가는 박원진 펠로우와 에이유디의 모습은 분명히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다음 세대를 위한 작은 실험을 이어가는 박원진 펠로우의 걸음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