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1일, 서울 새절역 근처 인권재단 사람의 공간 ‘스테이션 사람’에서는 발달장애인과 발달장애인 부모, 지체장애인의 조기 노화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는 서울대 장애와 건강 연구팀 DiSEPA(Disability, Social Environment, and Premature Aging)의 2024 연구성과 공유회가 열렸습니다. 브라이언임팩트가 함께한 이 특별한 자리에는 약 40여 명의 관계자와 관심 있는 분들이 참석해 의미 있는 연구 성과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 연구성과 공유회는 한국 사회에서 좀처럼 조명되지 않았던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 지체장애인의 일상과 마음의 흔적을 생생하게 담아냈습니다.
오후 2시부터 4시 30분까지 진행된 공유회는 시종일관 따뜻하고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김승섭 교수를 중심으로 한 DiSEPA 연구팀은 연구 과정에서의 재미있는 에피소드와 함께 진지한 연구 결과를 나누며, 장애인 연구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오랜 시간을 들여 그 분들과 함께 포럼을 진행하고, 발달장애 아동 캠프에 참석하는 등 꾸준한 활동에 대한 에피소드였습니다. 이들이 단순한 연구를 넘어 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삶에 진정한 변화를 가져오고자 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연구팀의 노력이 있었기에 2,271명의 발달장애인 부모님과 1,198명의 휠체어장애인이 참여한 대규모 연구가 가능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방대한 연구는 수많은 부모단체와 장애인 단체들의 적극적인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연구팀이 수차례 강조했던 것처럼, 서베이 참여는 조직 안에서 ‘믿을 만한 사람’이 내부 카톡망에 “참여해 주세요”라고 올려야 이루어집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서울시 자치구별 장애인부모연대, 그리고 여러 자립생활센터들이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었고, 때로는 친지들의 개인 단톡방까지 동원하며 연구 참여를 독려했습니다.
김자영 박사는 “단언컨대 저희 연구팀 혼자 했으면 이 숫자 반의 반도 못 모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며 부모님들과 단체들의 도움에 깊은 감사를 표했습니다.
DiSEPA 연구팀은 설문조사, 바이오마커 연구, 건강보험 빅데이터 분석, 현장 연구 등 다양한 방법론을 활용하여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 그리고 지체장애인들의 삶을 다각도로 조명했습니다. 이 접근법은 서로 다른 층위의 연구 결과가 서로를 뒷받침하며 더욱 풍부한 이해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설문조사를 통해 경험과 인식을 살피고, 혈액 검사를 통한 바이오마커 연구로 눈에 보이지 않는 신체적 변화를 확인하고, 건강보험 빅데이터로 전국 규모의 건강 패턴을 분석했습니다. 또한 베어베터와 같은 발달장애인 사업장 현장 연구를 통해 지속가능한 고용 모델의 가능성도 제시했습니다.
총 8편의 논문으로 이어질 이 연구들은 학술적 가치를 넘어, 실제 정책과 지원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될 것입니다.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도, 연구 결과들은 때로 참석자들의 마음을 무겁게 했습니다. 특히 몇 가지 발견은 우리 사회가 직면해야 할 현실을 선명하게 드러냈습니다:
1. 교육적 배제가 남긴 상처: 이동의 어려움으로 인한 아동기 교육적 배제 경험이 많을수록 성인기 자살 생각이 최대 3.8배까지 증가했습니다. 문영민 박사는 “우리가 경험했던 아동기에서의 배제라는 것이 어린 날의 아픈 기억이 아니라 성인기 정신 건강에 오랫동안 영향을 주는 흉터로 남는 구조적 문제”라고 설명했습니다.
2. 돌봄의 양면성: 놀랍게도 발달장애인 자녀 돌봄 기간이 길어질수록 부모의 텔로미어(노화 지표)는 짧아지지만, 정신건강 지표는 오히려 호전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이는 돌봄의 부담이 몸에는 누적되지만, 심리적으로는 적응하고 수용하는 과정을 거친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3. 부모단체 참여의 힘: 부모단체에 참여하는 어머니들은 초기에는 우울 증상이 더 높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울 증상이 낮아지는 반면, 참여하지 않는 어머니들은 오히려 우울 증상이 높아지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이는 고립보다는 연대가 정신건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중요한 증거입니다.
4. 미래 계획과 자살의 역설: 발달장애인 자녀의 미래를 준비하지 못한 그룹에 비해 계획되어 있는 부모 그룹에서 오히려 자살 시도율이 더 높게 나타났습니다. 이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자살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미래 계획이 없는 부모는 자녀를 남겨둘 수 없다는 부담으로 실행에 옮기지 않는다는 복잡한 현실을 보여줍니다.
5. 의료 접근성의 장벽: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이 의료기관에 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시간이 없어서”, “검진 동안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서”였습니다. 건강보험 빅데이터 분석 결과, 이들은 비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보다 건강 상태가 더 좋지 않음에도 건강검진 수검률은 더 낮았습니다.
연구팀의 발표가 끝나고, 눈으로 확인하게 된 현실에 먹먹한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이 연구는 단순한 학술적 성과를 넘어, 보이지 않던 삶의 모습을 가시화하고 변화의 필요성을 증명해 냈습니다. 김승섭 교수는 “취약계층은 살아가기 위해 절박한 기본적인 것들을 요구하는데도, 종종 그걸 두고 떼를 쓴다, 억지 주장을 한다고 이야기를 듣곤 해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자신의 요구를 합리화할 수 있는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기득권과 달리, 취약계층의 삶을 설명할 수 있는 지식은 충분히 생산되지 않거든요… 저희 연구가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겠지만, 그 싸움을 초라하지 않게 만드는데는 작게라도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말로 연구의 의미를 정리했습니다.
이 연구성과 공유회에서 공개된 결과들은 앞으로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 지체장애인을 위한 정책과 지원의 중요한 근거가 될 것입니다. 브라이언임팩트는 연구팀이 앞으로도 20여년 간 이어갈 귀중한 연구를 통해 더 많은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DiSEPA 연구팀이 밝혀낸 이 소중한 발견들이 우리 사회에 퍼져나가 더 나은 변화의 씨앗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숫자 뒤에 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이 마주한 현실, 그리고 그들이 꿈꾸는 미래를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갈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