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 속에 콕 박혀 손이 안가는 옷 한 벌. 이 옷이 다시 누군가의 삶에 스며드는 일. 정주연 펠로우는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브라이언 펠로우로 선정된 후 3년의 시간 동안, ‘다시입다연구소’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과 순환의 가치를 나누고, 옷과 사람 그리고 환경을 잇는 따뜻한 연결을 만들어 왔습니다. 6월, 환경의 달을 맞이해 정주연 펠로우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다시입다연구소는 단순히 옷을 나누는게 아니라, 옷을 통해 사람과 사람이 느슨하게 연결되고 소비와 환경을 되돌아보게 하는 조직이에요. 이 비전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해준 만큼, 굉장히 바쁘고 뜻깊게 지냈어요.
특히 정말 많은 교환 파티를 열었어요. 기존의 중고 의류 플랫폼은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나뉜 ‘판매’의 창구였다면, 저희는 1:1 교환을 원칙으로 해요. 재화로서의 옷의 가격은 중요하지 않고, 디자인이나 사이즈가 나에게 맞으면 지금 나에게 필요한 옷인 거예요. 그렇게 운영 중인 다시입다 파티는 ‘파티’라는 이름처럼 더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찾고 있어요.
파티가 점점 확산되면서 옷을 다르게 보게 되는 경험을 만들고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교환 파티를 하면 사람들이 ‘내 옷 처분하고, 새로운 옷 가져가야지’ 정도의 느낌이었는데, 요즘은 좀 달라졌어요. 자기 옷을 내놓고는, 앞에서 누가 가져가는지 기다리는 분들도 계시고 새 주인이 나타나면 인사하고 같이 사진을 찍기도 해요. 제가 얘기하고 싶었던 부분이 점점 전달된다는 것을 느꼈어요. 제가 꿈꾸던 세상이 바로 물건 하나하나에 정이 가고, 마음을 붙이게 되는 것이었거든요.
사실 브라이언 펠로우로 선정된 지 2~3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 정말 300년은 된 것 같아요. 계속 몰입해서 일만 했거든요. 그게 다 브라이언 펠로우 덕분이었죠.
브라이언 펠로우라는 타이틀이 생기니까 공신력이 생기더라고요. 사람들이 저희를 더 믿어주고, 협업하자고도 하고, 후원도 들어오면서 사단법인도 만들게 되었어요. 이 과정 속에서 힘든 것보다도, ‘내가 되고 싶은 사람’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막연히 ‘말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실제로 살아가는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거든요. 근데 어느 순간 지금의 제가 정말 그렇게 살고 있더라고요. 소비를 줄이고, 환경을 생각하고, 이것을 주장을 넘어 삶의 방식으로 실천하고 있는거요. 단순히 제가 하는 일의 성과를 내는게 아니라 저의 삶 전체가 바뀌는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그 출발점에 브라이언 펠로우가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지금까지 해오고, 하고 있는 모든 고민은 ‘이 순환 문화를 어떻게 더 널리 확산할 수 있을까?’에서 파생됐어요. 그래서 순환 문화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죠.
최근에 했던 활동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건 ‘전국 의류 교환 주간’이었어요. 제주, 부산, 대전, 광주와 같이 다양한 지역에서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지역에서 동시에 파티를 여는 행사죠. 사실 나서서 파티를 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녜요. 사람도 모아야 하고, 홍보도 해야 하고, 공간도 섭외하고 신경 쓸 일이 많거든요. 하지만 ‘우리도 해볼게요!’하고 신청하신 분들 덕분에 전국 각지에서 동시에 의류 교환 파티가 열렸었죠.
각 지역에서 주최해주신 분들이 하나같이 “우리도 이런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요”라고 이야기 해줬어요. 그게 저에겐 너무 감동적이고 흥분됐거든요. 서로 얼굴도 모르고, 어디에 사는지도 잘 모르지만 그냥 서로 공감하기 때문에 각자 자리에서 해보는 거예요. 이게 저희가 일하는 방식이에요. 느슨하게 각자 자리에서 연결되는 거요.
그리고 이런 연결에 대한 또다른 실험이자, 순환과 수선문화를 만드는 공간실험도 하고 있어요. 책방이나 공방 한 쪽에 수선 코너를 만들어 두어요. 누가 지키는 것도 아니고, 운영하는 것도 아니지만 재봉틀과 바느질 도구를 비치해 두는 거죠.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기 옷 고치고, 누가 놓고 간 옷 가져가고, 다시 놓고 가는 문화를 자연스럽게 만들고 있어요.
저는 그냥 진짜 사람 사는 세상이요. 작은 걸로도 기뻐할 수 있는 세상을 항상 꿈꿔요. 자본주의 세상에서 사람들은 소비하고, 버리는 행동을 반복하지만 그게 결국은 내 옆에 있는 생명들을 파괴하는 일이기도 하거든요. 고양이, 강아지, 길가의 꽃 한 송이가 사라지는 게 우리의 소비와 무관하지 않다는 걸 알리고 싶었어요. 절제하면서도 풍요롭게 살 수 있거든요.
많이 가지지 않아도 기쁘고, 내가 가진 걸 오래 쓰고, 소중히 여기는 것이 가능한 사회가 제가 상상하는 미래예요. 그리고 다시입다연구소는 그 상상을 조금씩, 꾸준히, 조용히 실험해보는 공간이죠. 더 많은 사람들이 작은 기쁨을 느꼈으면 해요.
정주연 펠로우와 다시입다연구소는 옷을 통해 온 세상을 바꾸려 하지 않습니다. 내가 가진 걸 오래 쓰고, 소중히 여기는 과정에서 우리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하고, 그 안에서 조금 다른 선택을 하게 만드는 실천을 이어갑니다. 그 발걸음 하나하나가 언젠가 우리를 다시 입고 더 좋게 변화시키는 세상으로 데려갈 것이라 믿습니다. 정주연 펠로우의 발걸음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