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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빈
계단뿌셔클럽 공동대표

막힘없는 이동을 실현하는 데이터 수집가들

휠체어 사용자이자 서비스 기획자인 ‘계단뿌셔클럽’의 박수빈 공동대표는 장소를 검색할 때마다 계단 정보를 더 편리하고 입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존의 서비스에서 제공하는 정보는 너무 단편적이고 부족해서, 이동하려는 의지를 사라지게 한다고 느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만든 것이 ‘계단정복지도’라는 앱 서비스입니다. 계단정복지도는 주말마다 기꺼이 시간을 내는 이들이 모은 계단 정보로 채워집니다. 덕분에 사용자는 가고 싶은 장소에 계단은 몇 개인지, 경사로가 있는지, 엘리베이터가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지요. 이동의 불편함은 당사자와 주변인들이 함께 겪는 것이기에, 계단뿌셔클럽은 우정의 힘을 믿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중입니다. 함께 손을 잡고 ‘이동약자와 그 친구들의 막힘없는 이동’이라는 꿈에 한 걸음씩 가까워집니다.

‘계단뿌셔클럽’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졌나요?

계단뿌셔클럽은 ‘이동약자와 그 친구들의 막힘없는 이동’이라는 비전을 가지고 시민들과 함께 서비스를 만드는 팀이에요. 여기에서 중요한 주어는 ‘이동약자와 그 친구들’인데요. 이동약자들이 어딘가로 이동할 때 친구, 가족, 지인, 직장 동료들과 함께하게 되는데, 결국엔 그들의 시선도 이동약자의 눈높이에 맞춰지거든요. 그렇다면 이동약자만이 아니라 그 친구들까지,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동할 때 제일 먼저 하는 행동이 장소를 찾는 일이잖아요. 이동약자는 장소를 찾을 때마다 ‘내가 여길 정말 갈 수 있나?’라는 불확실성이 크고, 정보를 확인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요. 시간이 오래 걸리면 귀찮아지고, 포기하거나 새로운 곳에 도전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그게 불합리하고 불평등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수동 휠체어를 탄 지 30년이 조금 넘은 휠체어 사용자이기 때문에 가장 잘 알고 있죠. 그래서 이동약자가 갈 수 있는 장소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데이터를 수집, 공유하는 ‘계단정복지도’라는 앱을 만들었어요.

직장 생활을 오래 이어오다가 계단뿌셔클럽을 창업하게 되셨다고요. 계기가 있었을까요?

사회인으로 산 지는 이제 10년이 조금 넘었네요. 대기업에서 직장 생활을 이직하면서 모바일 서비스를 기획하는 PM 업무를 담당했어요. 계단뿌셔클럽은 직장 생활 중에 사이드 프로젝트로 시작한 일이었는데요. 당시에 직장 동료였던 지금의 공동대표님과 같이 밥 먹을 장소를 찾기가 너무 어렵다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이동 문제 해결에 대해서 아이디어나 방향성은 늘 갖고 있었는데 공동대표님이 같이 해보자고 적극적으로 제안해 주셨어요. 저희 둘 다 성남에 거주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성남에서 시작하게 됐죠. 사람들과 함께 장소를 모으고 정보를 올려보면서 이 일이 꽤 잘 돌아간다는 걸 느꼈어요. 사실 성남까지만 하고 끝낼 생각이었어요. 큰 기업에 정보를 넘겨주면서 잘 활용해 달라는 제안을 해보기도 했죠. 여러 가지 현실적인 이유로 거절을 당하고 나니, 우리가 끝까지 해내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이 일만큼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일을 만나기 어려울 것 같기도 했고요. 결국 퇴사하고 본업으로 시작하게 되었어요.

계단뿌셔클럽이 제공하는 앱인 ‘계단정복지도’는 철저히 사용자 중심 서비스라고요. 특별한 점을 꼽는다면요?

기존 앱에서 이동약자에게 주는 정보는 이런 것들이에요. ‘접근성이 좋아요. 주의해야 해요. 접근성이 아주 나빠요.’ 그건 너무 납작한 형태의, 이미 결정된 정보예요. 사용자가 좀 더 입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정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계단은 몇 칸인지, 경사로가 있는지, 혹은 엘리베이터가 있는지가 정말 중요한 문제거든요. 저처럼 수동 휠체어를 타는 사람, 전동 휠체어를 타는 사람, 유아차를 미는 사람, 목발 짚는 사람의 처지가 모두 다르죠. 상황에 따라 친구가 한 명 있으면 계단이 한 칸 있는 곳도 갈 수 있고, 남성인 친구가 서너 명 있으면 계단 두세 칸 정도는 휠체어를 들고 갈 수도 있어요. 혼자 갈 수 있는 장소의 후보지가 두 곳뿐이었다면, 친구랑 함께 갈 수 있는 장소는 여섯 곳으로 늘어나는 거예요. 선택지가 늘어난다는 건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잖아요. 저희는 이걸 ‘계단 정보’라고 부르는데, 이런 식으로 정보를 주는 곳은 아직 없는 걸로 알아요. 서비스의 또 다른 중요한 축으로 장소에 대한 자세한 리뷰를 담은 ‘뿌클로드’라는 콘텐츠도 발행해요. 지금은 시작 단계라서 장소 수집과 조회가 주 기능이지만, 나중에는 다른 지도 앱처럼 조건에 맞는 필터를 걸어서 장소를 찾고, 리뷰를 보고, 사용자가 질문하고 답할 수 있는 버티컬 플랫폼으로 성장하는 게 목표예요.

대상자가 도움을 받는다는 가정 하에
서비스를 만들기 시작하면,
결국 공급하는 사람이 더 편한 쪽으로 가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동약자를 수혜자로 바라보면 안 되는 거죠. 

이동약자의 문제를 IT 기술에 접목하고 풀어나가는 데 어떤 과정을 거쳐 왔는지 궁금해요.

모든 건 문제의식에서 시작하잖아요. 뭐든 모바일로 검색하는 세상에서 원하는 정보를 쉽게 찾지 못한다는 게 문제였어요. 달나라도 가는 세상인데 이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부족한 것 같지는 않았거든요. 이동약자 문제가 갑자기 생긴 건 아니잖아요. 이동약자들은 언제나 존재했고, 사회는 언제나 불편했죠. 기존에 했던 시도들은 대부분 캠페인성이거나 단발성으로 끝나는 것들이었어요. 종이나 PDF로 만들어진 자료들도 있었지만, 좋은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더라도 편리성과 활용도가 높지 않았고요. 이동약자도 똑같은 소비자이기 때문에 소비자가 원하는 서비스를 만드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대상자가 도움을 받는다는 가정 하에 서비스를 만들기 시작하면, 결국 공급하는 사람이 더 편한 쪽으로 가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동약자를 수혜자로 바라보면 안 되는 거죠. ‘고객’이라고 칭하는 게 거부감이 들 수도 있지만, 영리 기업들은 고객의 지갑을 열게 하기 위해서 정말 열심히 고민하거든요. ‘이 사람들이 뭘 좋아하지? 어떻게 하면 내 서비스를 써주지?’ 하면서요. 그래서 저는 늘 PM의 시선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요.

서비스를 개발한 후, 가장 큰 이슈는 함께 활동할 사람을 모으는 것 아니었을까요?

맞아요. 처음에는 저와 공동대표님의 친구, 친구의 친구, 친구의 친구의 친구까지 불러 모았고, 동네 기반 앱에 작게 광고를 돌렸어요. ‘접근성 문제를 해결합시다.’라는 딱딱한 내용이 아니라 ‘같이 산책하면서 정보를 모아요.’ 정도로 가볍게 접근했더니 한두 분씩 찾아오시더라고요. 활동이 끝나고 소감을 나눴는데 너무 보람 있었다, 우리 동네에 턱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가볍게 걸으러 또 오고 싶다고 이야기해 주셨어요. 이후에 실제로 다시 찾아주시는 분들을 보니, 계단 정보를 모으는 일에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포인트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평소에 접근성이나 이동 문제에 공감하시는 분들이 꽤 있었지만 일상 속에서 해결에 참여할 방법은 별로 없었던 거예요. 시위는 좀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활동가가 될 만큼 열정적인 분들은 드물죠. 조금은 쉽게, 우정과 다정의 마음으로 참여하고 그 마음이 충족되면 다시 와주시는 것 같아요. 자신이 참여한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는 실체가 있어서 더 재미있어하시는 것 같고요.

이제는 주말마다 모여서 활동하는 인원이 꽤 많아 보여요. ‘크러셔 클럽’이라는 멤버십도 오픈했고요.

활동 규모가 커지면서 커뮤니티 내에서 교류하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 생겼어요. 이 일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여주시는 분들이 우리의 코어 멤버가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에 올봄부터 ‘크러셔 클럽’이라는 멤버십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요. 크루들은 시즌별로 3개월 동안 클럽을 꾸려나가며 활동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요. 주말마다 크루들을 포함해 많은 분이 활동에 참여하시는데요. 20~30대와 비이동약자분들의 비율이 높아요. 지금까지 2,000명 넘게 다녀가셨고, 2024년 가을 시즌까지 마치면 총 2,500명 정도 될 것 같아요. 2인 1조로 두 시간 동안 진행되고 1인당 20개 장소 리스트를 드리는데, 한국인의 특성상 시간 내에 체크리스트를 지워야 개운해지기 때문에 정말 열심히 해주세요(웃음).

계단뿌셔클럽의 경쾌하고 밝은 이미지가 확실히 허들을 낮춘 것 같아요.

이동권을 위한 기존 시위나 다른 활동들이 없었다면 분명 사회 인식이 이 정도로 발전하지는 못했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 시대에는 그 방식들이 너무 무겁게 다가오기 때문에 부담스러워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희는 장애인, 봉사 활동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어요. 저희끼리는 이런 얘길 하거든요. ‘우리 모두 요절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이동약자가 된다.’ ‘미래에 누구에게나 필요한 일을 우리가 먼저 시작한 것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훨씬 담백해져요.

누군가 밖으로 나와 더 많이, 같이 이동하는 경험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사회적 요구가 생길 때
비로소 이 문제가 풀릴 거라고 생각해요.

계단뿌셔클럽에서 이동약자와 비이동약자의 연대와 우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도 같은 맥락일까요?

친구한테는 봉사한다고 말하지 않잖아요. 희생한다고 말하지도 않고요. 그냥 친구 문제니까 해결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죠. ‘내 친구가 여기까지 오는 데 3시간이 걸리는 게 말이 돼?’라고 생각하면 이 문제뿐 아니라 다른 문제들도 더 빨리 해결될 거예요. 누군가 밖으로 나와 더 많이, 같이 이동하는 경험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사회적 요구가 생길 때 비로소 이 문제가 풀릴 거라고 생각해요. 활동을 나오신 분들이 이 문제를 알기 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듯이, 내 문제로 인식하도록 하는 경험이 중요해요. 유권자의 요구 혹은 기업에 대한 수요가 생기면 큰 단체들은 움직일 수밖에 없어요. 지금은 본인들에게 이 문제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으니까 피상적으로만 접근하지만, 저희 같은 사람들의 요구가 늘어나면 많은 문제들이 동시대에 해결될 수도 있다는 기대를 갖고 있어요.

계단뿌셔클럽 활동으로 이루어진 사회 변화와 개인적인 보람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지금까지 2,000여 분이 모여 20번 정도 활동을 했고, 2만 6,000개 장소의 계단 정보를 모았어요. 많은 분들이 이런 방식으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느끼셨고, 저희 역시 이렇게 친근하게 접근해도 괜찮다는 걸 확인하게 됐어요. 크러셔 클럽으로 참여했던 친구 중 몇몇은 어떤 문제에 새로운 시선으로 접근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하고, 한 대학생 친구는 진로의 범위가 더 넓어졌다고 얘기해 줬어요. 비영리 단체나 접근성 관련 직업에 대해서도 고려하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우리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건 아니라는 안도감과 뿌듯함이 들어요. 누군가의 인생에 그런 고민할 지점을 줬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면서도, 다시 한번 등을 바로 세우게 해요. 개인적으로 보람을 느낄 때는 이동약자분들이 새로운 활동을 하러 나오셨을 때예요. 여기까지 얼마나 막힘 가득한 길을 뚫고 오셨을까 싶으면서도, 비슷한 상황을 겪는 친구로 조금이라도 무언가 이바지하는 것 같아서요. 늘 이동약자분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요.

말씀하신 반응을 끌어내기 위해 현재 활동을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것도 중요할 것 같은데요. 계단뿌셔클럽에 있어 브라이언 펠로우 선정은 어떤 의미를 가지나요?

지속 가능한 회사를 만드는 것이 저한테는 중요한 일 중 하나인데요. 지속 가능하다는 뜻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임팩트를 내서 팀을 운영하는 방법을 찾는다는 의미인데, 결국 자립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어내야 가능해요. 거기까지 가는 데 버텨야 하는 시간들이 있고요. 비영리 스타트업은 매출 대신 문제를 푸는 임팩트를 잘 내야 하고 그 와중에 개인의 삶을 또 영위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해요. 브라이언 펠로우는 그런 점에서 개인의 지속 가능성을 높여주는 프로그램이에요. 또, 일과 연관된 네트워킹 측면에서도 큰 도움을 주기 때문에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지속 가능성을 높여주죠. 그래서 꼭 브라이언 펠로우가 되고 싶었어요. 작년에는 서류에서 떨어졌는데,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뒤 올해 선정이 됐기 때문에 응원과 인정을 받는 기분도 들어요. “네가 하고 있는 일은 충분히 의미 있어. 잘하고 있어. 우리가 도와줄 테니 더 잘해봐.”라는 응원이요.

계단뿌셔클럽의 최종 목표가 궁금해요.

계단뿌셔클럽의 바로 다음 목표는 서울 주요 지역 나들이 장소 혹은 국내 주요 여행지를 검색할 때 가장 먼저 확인하는 서비스가 되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 지금까지 수집한 정보들로 지도를 만들어 테스트하고 있어요. 타 지도 서비스처럼 음식점, 카페 등 카테고리별로 쉽게 볼 수 있고, 장소의 접근 레벨을 쉽게 알아보도록 구성한 지도예요. 서울에 7만 7,000개 장소 정보를 모으면 주요 지역은 얼추 모이는 것이고, 2024년 11월 중순이나 12월 초에 오픈하려고 해요. 정보는 꾸준히 업데이트할 예정이고요. 최종 목표는 조금 더 원대한데요. 저희 비전인 ‘막힘없는 이동’은 이동을 쉽게 가능하게 하는 서비스를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실제로 ‘이동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에요. 우리나라만큼 사회에서, 대중교통에서 이동약자를 보기 어려운 나라도 없을 거예요. 많은 이동약자분들이 자주, 많이, 자유롭게 다니는 사회가 제가 그리는 꿈이에요. 그들에게 필요한 서비스의 부재를 해결하고, 많은 사람들이 저희 앱에서 정보를 찾고, 고민 없이 약속 잡고, 막힘없이 어딘가를 찾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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