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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에디
성소수자인권활동가

내 주변의 성소수자 친구가 낯설지 않은 일상

박에디 펠로우는 청소년 성소수자를 위한 인권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지지와 연대의 힘을 믿으며, MTF 트랜스젠더 당사자로 다양한 매체와 대외 활동에 기꺼이 나섭니다. 모두가 스스로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회를 꿈 꾸며, 10년째 성소수자 인권 운동을 이어가고 있는 박에디 펠로우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트랜스젠더로서 존재를 드러내는 활동가가 있다면
소수자들은 더 많이 용기를 낼 수 있지 않을까요?

Q.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트랜스젠더 당사자 활동가 박에디라고 합니다.

 

지금은 이렇게 당당하게 당사자성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여기까지 오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 정보와 롤모델의 부재로 20대 후반까지도 방황의 시간이 있었어요. 제가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정체화하는 것과, 사회의 낙인과 차별은 또 다른 문제이기도 하고요.

 

지금의 성소수자 청소년들은 조금 더 열린 세상에서 자신을 긍정하며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인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박에디

Q. 어떤 계기로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 문제를 인식하셨나요?

저는 스물네 살에 트랜스젠더 여성으로 정체화했어요. 온전한 저로 살아가기로 결심하고서 처음 사귄 친구가 성소수자 시민 활동가들이었어요. 이들을 통해 인권단체 프로그램을 접하고 자기 긍정을 배울 수 있었어요. 저의 존재를 지지해주는 사람들과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고 공감받는 경험을 통해 스스로를 지키는 힘을 길렀죠.

 

저는 20대 중반에 이런 시간을 거쳤지만, 10대~20대 초반의 성소수자들은 이런 자원을 경험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아요. 홀로 자기 자신을 혐오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고, 때론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하고요.

 

이태원에는 성소수자를 환대하는 교회가 있어요. 그 교회를 같이 다니던 게이 청소년이 스무 살을 앞두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친구뿐 아니라, 10대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례가 적지 않더라고요. 그때 절실히 느꼈어요. 우리 사회에는 청소년 성소수자가 갈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것. 너무 힘든 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말할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것을요.

Q. 같은 성소수자 안에서도 청소년 성소수자가 성인에 비해 취약한 점은 무엇일까요?

일단 가지고 있는 자원이 너무 달라요. 비청소년, 성인이라면 부모가 나에게 폭력을 행사했을 때 집을 나오면 돼요.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직장에서 잘리면, 물론 힘든 일이지만 다른 직장을 구하면 돼요. 우리 어른들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을 청소년들은 할 수가 없습니다.

 

부모에게 폭력과 학대, 차별을 받다가 쉼터를 찾으면 그곳에서도 차별이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제가 만약 청소년이었고 집을 나온 상황이라면 저는 남성 쉼터로 가야 해요. 물론 정체성을 숨기고 있을 수는 있겠지만, 뭔가 숨겨야 하는 상황에서는 사람의 마음이 초라해지고 우울해지잖아요. 나도 모르게 하는 행동이나 표현들이 조롱거리가 될 수도 있고요. 도움을 요청하고 회복을 위해 찾은 곳에서 또 상처를 입어요.

 

대한민국의 청소년 보호법은 아이를 다시 가정으로 보내는 걸 우선순위로 두거든요. 보호시설을 견디다 못해 나오면, 다시 집으로 보내지는 거예요. 이 사회에서 청소년이 할 수 있는 게 정말 없어요, 아직까지는.

한국 사회에서 트랜스젠더는
꿈과 목표를 감히 생각하기 어려워요.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일상인 사회에서는 
생존이 먼저거든요.

Q. 벌써 10년째 인권 운동을 이어오고 계세요. 그간 어떤 활동들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2013년부터, 트랜스젠더 인권단체를 만드는 활동을 3년 정도 했어요. 그래서 만들어진 단체가 ‘조각보’입니다.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을 만나서 그들의 생애사를 기록하는 작업을 했어요. 다른 당사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의료·법률 정보를 찾아 모으고 기록하여 홈페이지에 공유했죠.

 

위기상황에 놓인 10대~20대 초반의 청소년 성소수자를 지원하기 위해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의 스타트 멤버로 참여하였습니다. 청소년 상담, 직접적인 위기 지원을 도왔고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후원자 모집도 했어요. 2015년 문을 연 ‘띵동’은 지금까지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요즘 유튜브를 통해 성 정체성 고민을 해소하려는 청소년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성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 채널에 출연하여 트랜스젠더 당사자로서 경험을 나누기도 했고요.

퀴어 예능 유튜브 '퀴서비스' Ⓒ 연분홍tv

최근엔 트랜스젠더 파티를 열었어요. 아직은 되게 작은 규모이고, 지금까지 2회 정도 진행했는데요. 음지에 숨어서 하는 파티가 아니라, 낮에 한강진과 이태원 일대에서 커다란 출력물을 걸어두고 각자 원하는 옷을 입고 와서 즐기는 시간이에요. 자신의 정체성을 이제 막 받아들이고 앞으로 살아갈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와서 ‘이렇게 안전한 파티가 있구나’, ‘내가 이런 모습이어도 괜찮구나’ 느끼면서 연대감과 소속감을 얻어가길 바라고 있어요. 

여러 단체와 사람들을 만나면서 
저를 표현하는 연습을 했고 지지의 경험을 받았어요.
그 경험의 가치와 효과가 얼마나 큰 지
저는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Q. 박에디 님의 활동은 어떤 차별점이 있을까요?

10년이란 시간 동안 성소수자 인권단체 활동가들과 많은 활동을 함께 하며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요. 무엇보다도 제가 트랜스젠더 당사자이기에 가능한 지점들이 있어요. 사회적으로 성별 정체성을 오픈하는 활동가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다양한 비영리 활동에서 당사자의 목소리를 낼 수 있고요.

 

트랜스젠더이자 위기지원 활동가로서 경험이 풍부해서, 지원이 필요한 당사자에게 섬세한 접근을 할 수 있어요. 제가 띵동에서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만나 해주는 말이나 지원은, 사실 제가 예전에 간절히 원했던 것들이거든요. 저에게 지원을 요청한 청소년 성소수자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줘야 하는데, 저는 제가 되게 행복해졌던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요.

 

저의 이런 차별점을 활용해서 일상에 더욱 밀접한, 실질적인 도움을 많이 주고 싶어요. 성별 정체성으로 고민하는 10대 청소년들과 같이 손을 잡고 옷을 사러 가는 거예요. 어떤 옷을 입고 싶은지, 어떤 옷이 잘 어울리는지 혼자서는 시도하기 힘든 도전을 함께 하고. 제가 알고 있는 의료 정보를 공유하고, 의사 선생님과 상담을 함께 하기도 하고요. 필요할 때마다 당장 달려가는 일은 어렵겠지만, 위기상황에 놓인 성소수자 청소년들에게 지원 단체를 연결해줄 수 있는 징검다리 역할도 계속하고 싶습니다.

정체성을 온전히 드러내면서도
사회의 일원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는 저를 통해
성소수자 청소년들도 
인생을 더 잘 살아내고 싶다는 의지를 갖길 바라요.

Q.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가시화하며 살아가기로 결심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 세상에 ‘아는 트랜스젠더 있는 사람’을 한 명이라도 더 만들고 싶었어요. ‘내 주변에 성소수자가 있다’는 사실은 의외로 엄청난 힘을 가져요. 누군가가 커밍아웃을 했을 때, 제 친구라면 적어도 그 사람에게 욕은 하지 않겠죠. “나 에디 아는데” 라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갈 수도 있을 거예요. 저를 아는 사람은 다른 트랜스젠더 당사자나 성소수자 당사자를 만났을 때, 지지나 격려까지는 아니어도 혐오를 하지 않게 되길 바랐어요. 

 

트랜스젠더 당사자로 활동하면서 “에디의 이야기를 해주세요”라는 요청을 많이 받아요. 첫 사례가 되는 것은 고통스럽고 또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그만큼 가치가 있어요. 과거의 저와 똑같은 고민을 하며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괜찮다”라고 말해줄 수 있거든요. 또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고요. 사실 성소수자분들은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힘을 얻거든요. 그런 관계를 만드는 것이 제 역할인 것 같아요.

Ⓒ 박에디

트랜스젠더 당사자로서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면 사람들이 나쁜 말, 아픈 말을 좀 덜하지 않을까. 우리의 존재를 인식하지 않을까, 궁금해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게 저의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이기도 하고요. 연분홍치마에서 트랜스젠더 다큐 <에디와 앨리스>를 촬영하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제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도 곧 출간할 예정입니다.

우리 주변에 ‘트랜스젠더들이 있다’라는 게
시작인 것 같아요.

Q. 박에디 님이 꿈꾸는 세상은 어떤 모습인가요?

성소수자 청소년들이 진로를 고민하는 세상이요.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만나면 대부분은 “너무 힘들어요”, “집에서 나가고 싶어요” 같은 이야기를 해요. 부모에게 폭력을 당하거나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이야기가 이어지죠. 그게 지금의 현실인 거예요.

 

저는 아이들이 “저 간호사가 되고 싶어요”, “공무원 공부를 하고 있어요”, “여행가가 될래요” 이런 이야기를 먼저 하는 장면을 꿈꿔요. 앞으로 펼쳐질 인생을 궁금해하고 미래를 자유롭게 꿈꿀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것만으로도 저는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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