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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원
사단법인 늘픔가치 대표

마을을 걷는 약사

‘늘픔가치’ 대표 박상원 펠로우는 오늘도 마을로 걸어 들어갑니다. 지역 공동체의 건강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돌보기 위해서지요. 마을약사는 주민들에게 쉬운 언어로 복약 지도를 하여 자신의 병을 이해하고 약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약국 안팎에서 주민의 삶을 살피고 지역 공동체를 회복하는 데 힘쓰고 있지요. 늘픔가치는 주민들의 근본적인 건강을 위해 사회복지기관 등 지역 내 협력 자원과 연계를 도모하고, 새로운 마을약사의 출현과 연대로 더욱 건강해질 지역 공동체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오는 길에 ‘늘픔약국’을 봤는데, 상원 님의 행보를 마주한 것 같아 발걸음이 가벼워졌어요. 직접 소개해 주실래요?

안녕하세요, 사단법인 ‘늘픔가치’ 대표 박상원이에요. 늘픔가치는 늘픔약국에서 출발한 법인이에요. 늘픔약국은 2010년부터 시작된 공동체 약국으로, 약사라는 직업과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활동을 일치시켜 공익적 약사상을 실현해 가고자 하는 약사들이 꾸려 나가고 있죠. 일반 약국은 개인 사업장이어서 약국장이 수익을 갖지만, 늘픔약국은 약국장을 포함한 공동체 약사 모두가 동일한 임금을 받고 남은 수익을 지역사회에 환원해요. 지역 공동체를 회복하는 일에 앞장서겠다는 사명으로 운영해 나가는 곳이기도 하지요. 저는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약국 바깥의 주민들 생활을 조금 더 가까이 접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사단법인 늘픔가치를 설립하고 마을약사로 활동하고 있어요.

주민들의 생활이 궁금해진 이유가 있나요?

2015년에 서울시 시범 사업으로 시작된 방문 약료 서비스가 그 발판이 되어주었어요. 처음 방문한 집은 저희 약국에 꾸준히 오시던 어르신 댁이었어요. 복용 중인 약이 모두 열세 종류나 돼서 평소에 복약 지도를 상세히 해드리곤 했는데, 건강에 관심이 많으셨음에도 병에 차도가 없어서 안타까웠죠. 댁에 방문하고서야 약의 종류나 복용이 아니라 생활과 습관에 문제가 있었단 걸 알게 됐어요. 어르신은 가파른 오르막길 집 옥탑방에서 혼자 지내고 계셨는데, 장보기가 쉽지 않으니 대체로 오래 보관할 수 있는 것들로 끼니를 때우고 계셨어요. 영양소가 현저히 부족한 상태였죠. 의료적인 접근만으로는 근본적인 건강을 개선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역사회에 도움을 요청했어요. 주민센터를 통해 무료 반찬 서비스를 연계했고 사회복지사의 도움을 받아 집을 옮길 수 있게 해드렸죠. 지역 주민을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의 자원과 주민을 연결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몸소 깨달은 계기였어요.

지금은 약을 먹지 않더라도 누구나 나이가 들면 약을 먹게 될 거예요. 기대 수명이 늘어날수록 복용하는 약은 점차 많아질 거고요. 안전한 의약품 사용을 위한 건강 상식은 환자가 아니더라도 알아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마을약사는 방문 서비스와 더불어 마을 안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시지요. 건강한 주민들과의 만남도 도모하고 있고요.

지금은 약을 먹지 않더라도 누구나 나이가 들면 약을 먹게 될 거예요. 기대 수명이 늘어날수록 복용하는 약은 점차 많아질 거고요. 안전한 의약품 사용을 위한 건강 상식은 환자가 아니더라도 알아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최근에는 더 많은 주민과 만나기 위해 마을 축제 현장도 자주 찾고 있어요. 늘픔가치 부스를 차려 폐의약품 수거에 관한 캠페인을 진행하고 ‘늘픔마블’이라는 저희가 개발한 게임을 함께하기도 해요. 건강 습관이 어릴 때 형성될 수 있도록 어린이와 만나는 자리를 만들기도 하고요. 요즘은 요양보호사와 생활지원사 교육도 집중해서 진행하고 있어요. 요양보호사 한 분당 어르신 스무 명 정도를 돌보고 계셔서 한 사람이 교육받으면 여러 명에게 교육 내용이 전달되어 효과적이거든요. 마을약사가 환자에게 직접 교육하고 관리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노화가 진행되는 어르신께 교육하는 데는 한계가 있고 인력도 부족하기 때문에 마을 주민과 연결될 수 있는 효과적인 방향을 고민하고 있어요.

늘픔가치는 건강 교육과 의료 서비스를 넘어 주민들과 소통하는 데서 보람을 느끼는 것 같아요.

질병과 처방약만으로는 전반적인 건강 상태를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주거환경, 노동환경, 관계망 등 생활 전반을 함께 살피는 것이 중요해요. 약국에는 꼭 아픈 사람만 오는 건 아니어서 주민들을 폭 넓은 시야로 관찰하고 생활상을 살피기에 용이해요. 약국에 설치된 자판기를 유난히 자주 찾는 어르신이 생기면 식사를 제대로 못 하시는 건 아닌지 넌지시 묻고, 주민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걸 들으면서 속사정을 알게 되기도 하거든요. 한번은 늘 영양제를 한 통씩 사 가시던 어르신이 반 통만 사가겠다고 하신 적이 있는데, 이유를 묻다가 형편이 어려워졌다는 걸 알게 되어 지역사회 기관과 연결해 드리기도 했어요. 약국은 문턱이 낮은 의료 기관인 만큼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주민들이 겪는 생활 문제를 보다 쉽게 발견할 수 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약사로서 전문 지식을 전하면서 주민들에 대한 관심과 관찰 또한 놓지 않아야 하죠.

자신의 몸을 수단으로만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복약 지도의 핵심은 내 몸에 주도권을 가지고 사랑할 수 있도록 돕는 거니까요.

활동하시면서 맞닥뜨린 고민이나 문제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어요.

많은 현대인이 시간은 없고, 건강은 걱정되는 만큼 손쉽게 영양제를 구입하곤 해요. 영양제를 먹으면 좀 나을 거란 막연한 기대를 품고 구입하는 경우가 많죠. 그러나 뚜렷한 목적 없이 구입하는 약은 결국 제기능을 하지 못하고 버려지게 돼요. 특히 요즘은 선물 받은 영양제가 많이 버려지는데, 약도 물건처럼 현명한 소비가 필요하다는 걸 전하고 싶어요. 의약품을 폐기하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사회적 비용이 들고 환경 오염도 심각하거든요. 목적 없이 약을 복용했을 때 우리 몸에 생기는 문제도 많고요. 최근에는 약국에 오시는 분들이 증상을 빠르게 멈추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세요. “콧물이 너무 많이 나서 일할 수가 없어요. 콧물 멈추는 약 좀 주세요.”라거나 “밤에 공부할 수 있게 잠 안 오는 약 좀 주세요.” 같은 말들이죠. 지금 해야 할 일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몸을 수단으로만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복약 지도의 핵심은 내 몸에 주도권을 가지고 사랑할 수 있도록 돕는 거니까요.

늘픔가치는 계속해서 건강한 지역사회를 위해 활동해 나갈 텐데요. 앞으로는 또 어떤 계획과 목표를 가지고 있나요?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건 마을약사를 고용하는 일이에요. 전문 의료 지식을 갖춘 사람이면서 주민들 눈높이에 맞추어 쉬운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는 친근한 약사를 기다리고 있죠. 주민들이 자신의 병을 이해하고 직접 약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고, 건강 주체성을 회복해 나가는 걸 행복으로 아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어요. 훗날에는 마을약사를 양성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도 개발하고 싶고요. 지금까지 수많은 마을약사가 함께해 왔지만 아직 사회적으로는 마을약사가 뚜렷한 직업군으로 인지되지 않고 있어요. 마을약사의 수요가 많아지고 전담 인력이 배치된다면 전문가로서의 윤리 의식과 헌신성을 갖춘 마을약사들이 폭넓게 활동할 수 있겠죠. 덧붙여 사회적인 인식과 제도 변화가 동반된다면 마을약사의 활동은 더욱 넓고 다양해질 거예요.

건강권
마을약사
약물오남용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