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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현
이주민통번역센터 링크 센터장

언어로 연결하는 마음들

김나현 펠로우는 부산 기반의 이주민통번역센터 ‘링크’의 센터장으로서 언어를 통해 이주민과 선주민을 연결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링크는 의료 분야를 중심으로 노동, 체류, 법률 등 생활에 필요한 분야에서 이주민에게 통번역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입니다. 이주민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주민 스스로 움직여야 한다는 믿음을 가진 그는 링크 활동을 비롯해, ‘성·인종차별적 조례 폐지 TF’, ‘부산이주민포럼’을 만들어 이주민을 향한 사회의 잘못된 편견에 맞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1995년 한국 땅을 처음 밟으셨으니, 벌써 28년 차네요. 당시 처음 경험한 부산의 인상을 기억하시나요?

시간이 참 빨라요. 꽃이 만개하던 봄이었어요. 산업연수생으로 40여 명의 친구들과 4월쯤 처음 한국에 도착했죠. 바다와 푸른 식물로 둘러싼 풍경이 설레던 마음을 더 들뜨게 해주던 기억이 나네요. 젊은 시절이었죠(웃음).

‘이주민과 함께’와는 한국어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하며 인연을 맺었다고요.

제게 두 명의 자녀가 있어요. 아이들이 학교에 갈 무렵에는 엄마로서 한국어를 더 완벽히 할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적어도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명확히 할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결심이요. 같은 고민을 하던 베트남 출신 이주민 6명과 당시 ‘외국인노동자 인권을 위한 모임’으로 불리던 ‘이주민과 함께’라는 단체의 문을 두드리고 한국어를 가르쳐 달라고 졸랐어요.

작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서 나아가 제도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새로웠고요. 제가 잘 모르던 세상을 마주한 기분이었죠.

한국어 수업을 듣던 이주민 학생이 이주민통번역센터 링크의 센터장이 된 거군요. 통번역 활동을 시작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한데요.

일요일마다 한국어를 배우러 이곳에 드나들며, 많은 이주민들이 여러 이유로 센터를 찾아온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일하다가 다친 사람, 임금 체불을 당한 사람, 의료 통역 서비스를 받는 사람 등 사정은 제각각이지만 그들에게 센터의 활동가들이 도움을 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작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서 나아가 제도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새로웠고요. 제가 잘 모르던 세상을 마주한 기분이었죠. 자연스레 저도 베트남 이주민들의 통역을 돕기 시작했고, 점차 도움의 영역을 확장해 나갔어요. 활동 초기에는 이주민들의 교육과 상담에 주력했는데, 활동을 하다 보니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해결법은 ‘언어’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렇게 이주민과 함께의 부설 기관인 이주민통번역센터 링크에 합류했어요.

링크가 하는 일에 대해 좀더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통번역 서비스 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이주민을 돕는다고 알고 있어요.

의료 분야를 주축으로 노동, 체류, 부동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주민을 위한 통번역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요. 현재 19개 언어 가능자로 구성된 50여 명의 통번역 전문가가 활동 중이에요. 부산의료원에는 베트남어, 중국어, 러시아어, 영어, 필리핀어 통역 활동가가 상주하며 이주민이 원활하게 의료 서비스를 받도록 돕고 있죠. 의료 기관뿐 아니라 노동청, 출입국, 법원 등 공공 기관을 방문할 때도 활동가가 동행해 통역을 도와주고 있고요.

언어 지원이 필요한 이주민을 돕는 것만큼, 통번역 활동가들을 위한 교육 및 지원 서비스 역시 링크의 중요한 활동이에요. 이주민 의료 통역 전문·심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통번역 활동가 양성과 역량 강화에 힘쓰면서, 통번역 활동가들의 심리적 소진을 예방하고 마음 치유를 위해 ‘마음 건강 워크숍’도 매해 진행하고 있고요.

마음 건강 워크숍에 눈길이 가네요. 통번역 활동가분들의 지속 가능한 활동을 위해선 그분들의 몸과 마음을 보살피는 일도 중요하니까요.

 맞아요. 그래서 매달 통번역 활동가 월례 회의를 진행해요. 통번역 상황과 사례를 공유하는 자리죠. 의료 통역 서비스를 지원하다 보니, 활동가들이 이주민들의 안타까운 상황에 몰입하며 마음의 상처를 쌓아두는 경우가 적지 않더라고요. 이주민을 돌보고, 또 엄마로서 가정을 돌보다가 정작 자신을 돌보는 것은 놓치는 활동가들도 있었고요. 전문 심리 상담 강사님의 강연과 상담을 통해 활동가분들이 자기 자신에 집중하고 마음속 상처를 보듬는 시간을 가지며 재충전할 수 있도록 돕고 있어요.

나현 님께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2020년 1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예방 수칙을 13개 언어로 번역해 배포한 경험이 있어요. 처음 정부가 공개한 예방 수칙은 한국어, 영어, 중국어 세 가지 언어로만 구성되어 있었죠. 이 예방 수칙을 접하자마자 저희 활동가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한마음 한뜻으로 단 3일 만에 번역 작업과 디자인, 배포를 마칠 수 있었어요. 한국에 거주하는 다양한 국가의 이주민들에게 도움을 주기도 했고, 링크를 대외적으로 알릴 기회가 되어 가장 뿌듯했던 순간이네요. 그리고 2012년 부산시에서 500만 원 지원받던 예산을 2021년 1억 원까지 올리게 된 것도 보람 있는 성과였어요. 예산이 적을 때는 지정된 소수의 병원에서만 통번역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지만, 현재는 더 많은 이주민에게 다양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어 기뻐요(웃음).

지원할 수 있는 범위가 늘어난 만큼 보람도 크시겠어요. 하지만 선주민과 이주민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언어의 장벽뿐 아니라 넘어야 할 과제가 많잖아요.

많은 난제가 있어요. 여러 제도와 매체에서 이주민에 대한 편견을 심화시키는 경우를 쉽게 접할 수 있는데요, 농촌 지역 지자체에 거주하는 일정 연령 이상의 한국인 남성을 대상으로 국제결혼 비용을 지원하는 조례가 그 예죠. 아시아 지역 여성들을 상품화하는 시각에서 촉발된 문제적인 조례라고 생각해요. 여전히 이러한 조례를 시행하고 있는 지자체가 많아요. 이에 대응하기 위해 이주여성 지원 단체 및 공익 변호사 단체와 함께 ‘성·인종차별적 조례 폐지 TF팀’을 꾸렸어요. TF팀을 통해 해당 조례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관련한 피해 사례를 모니터링하며 조례 폐지 활동을 이어가고 있고요. 또,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이주민 혐오와 불안감을 조성하는 이주민 중심 범죄 단체를 묘사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러한 소재의 문제점을 짚어내고, 선주민의 인식 개선을 촉구하는 것 역시 커다란 과제처럼 느껴져요.

차별을 없애려면 이주민 스스로 목소리를 내어 변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를 포함한 활동가들이 통번역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유죠.

편견의 온상들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사회 곳곳에 자리하는 현실이 안타까워요.

차별을 없애려면 이주민 스스로 목소리를 내어 변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를 포함한 활동가들이 통번역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유죠. 링크가 속한 사단법인 ‘이주민과 함께’에는 8개국 출신의 결혼이주여성 활동가로 구성된 다문화 강사단이 있는데, 초등학교에서 베트남어 교실과 상호 문화 교류 강의를 통해 문화를 알리고 거리감을 좁히는 교육을 하고 있어요.

언어 장벽 때문에 소외된 이주민들을 도와오신 나현 님께 통번역이란 단순히 언어를 다른 언어로 바꾸는 것을 넘어 더 큰 의미로 다가올 것 같아요.

제게 통번역이란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일이에요. 센터 이름인 링크에도 그 의미가 담겨 있죠. 언어를 옮기는 것을 넘어 정확한 정보, 법과 제도, 권리와 의무 그리고 마음까지 잘 전달해야 하는 일이에요. 저를 포함해 50여 명의 링크 활동가들은 우리 일이 보람을 넘어 사회의 변화를 만드는 일이라고 믿으며 활동하고 있어요.

언어의장벽
이주민
통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