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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주영
공연 예술 독립 기획자

한계 없는 공연의 형태

하나의 분야에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형태의 공연을 추구하는 고주영 펠로우는 예술과 함께 살아갑니다. 고주영 펠로우가 기획하는 공연은 한계가 없습니다. 그 공연을 이끌어나가는 주인공들도 한계가 없습니다. 기획자로서 그녀는 소수자들이 자신의 삶을 표현하고, 스스로 가지고 있던 벽을 허물 수 있게끔 유도합니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삶을 지향하면서.

주로 사회적 소수자들의 시선에서 이야기하는 공연을 기획하시는 것 같아요.

사회적 소수자 당사자들이 가급적이면 무대 위에서 자기 얘기를 직접 하게 만들어요. 관객들은 그런 소수자들이 세상 어딘가에 있다는 것은 알지만, 실제로 어떤 존재이고 어떤 삶을 사는지는 잘 모르잖아요. 무대를 통해서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거죠. 최근에 주로 그런 공연들을 이어오고 있어요.

그러한 공연에 집중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여러 가지 터닝 포인트가 있는데요, 지금과 같은 형태로 공연을 만들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세월호 참사였어요. 세월호 참사가 터졌을 때 어떤 공연을 만들 수 있을까 계속 고민하다가 유가족들과 만나게 되었는데요. 그러던 중 유가족의 목소리를 직접 전해보자고 생각이 들어 공연을 만들게 되었고, 그 이후로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분들하고 같이 작업하며 그분들이 직접 무대에 올라갈 수 있도록 만든 것이죠.

세월호 참사 유가족분들에게는 어떻게 다가가셨는지 궁금해요.

세월호 참사 이전에 2012년부터 ‘도시와 건축’ 시리즈를 기획하고 있었어요. 2014년 5월을 목표로 안산에서 3일짜리 독립 국가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준비하던 중 참사가 터졌어요. 프로젝트가 무산되었죠. 이듬해에 축제가 재개되어 다시 프로젝트를 해보려고 했는데, 안산은 저한테 이미 세월호라는 이미지로 너무 크게 다가와 있었어요. 그걸 빼고 안산을 이야기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죠. 그래서 축제 측에 기회가 된다면 세월호와 관련된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고 말씀드렸고, 아티스트와 협의를 하다가 우리도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의 고통을 겪자는 결론이 나왔어요. 당시 유가족분들이 대통령을 만나겠다고 진도에서 청와대로 걸어가는 도보 행진을 하셨잖아요. 거기서 영감을 받아 걷기 시작한 것이 ‘안산순례길’ 프로젝트예요. 2015년에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유가족분들에게 다가가지 못했어요. 불쑥 ‘저 연극하는 사람인데 만나주세요.’ 하는 것도 너무 송구한 일이잖아요. 5년 동안 프로젝트를 이어가던 중 비로소 유가족 중 극단을 만들어 연극 활동을 하시는 어머님들과 교점이 생기고, 관계가 쌓이기 시작했죠. 마지막 2019년 프로젝트에는 어머님들이 오셔서 같이 걸어주셨어요.

공연에 관한 아이디어는 주로 어디서 얻나요?

기획은 개인적인 관심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제가 갖고 있는 사회적 소수성에서 오기도 하고, 우연히 운명처럼 만난 대상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되기도 해요. 그분들이 무대 위에 설 필요가 있다면, 어떤 모습으로 어떤 이야기로 서야 할지 고민하는 식으로 공연을 기획하고 있어요.

한국 사회를 10년 전과 현재를 비교했을 때,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인식이 변화했다고 느끼시나요?

편견이나 차별, 혐오는 여전한 것 같아요. 오히려 더 노골적으로 보여지는 부분이 있죠. 이전과는 다르게 그들의 존재가 가시화되고 있으니까요. 당연히 반대하는 사람들의 움직임도 가시화되는 거죠. 장애인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휠체어 타는 게 잘못된 것이 아니라 아무 데도 못 가게 만들어진 사회가 잘못된 것인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 장애인분들이 목소리를 낼수록 더욱 혐오의 부분도 강화되는 거죠. 그리고 특히 법이나 제도적인 부분은 변화가 굉장히 더디잖아요. 다만 감사한 건, 제가 몸담고 있는 예술계는 미투 운동 이후 퀴어나 페미니즘 등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워졌다는 거예요. 받아들이는 관객도 많아졌고요. 장애인 관람 접근성에 대한 고민도 연극계가 일찍 시작했고 빠르게 확산된 편인데요, 예술인의 한 사람으로서 다행스럽고 감사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발달 장애인들과 4년에 걸쳐 연극 워크숍을 해오면서 ‘연극은 어디서, 누가, 무엇을 했는지만 있으면 된다’고 설명해요. 가장 단순한 형태지만 그것만 있어도 연극이 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연극을 가지고 소수자들과 여러가지를 시도할 수 있는 부분이 크다고 생각해요.

그러한 이슈를 다루는 많은 방법 중 연극이 갖는 장점은 무엇일까요?

연극은 굉장히 폭이 넓다는 것이 장점이에요. 모든 것은 연극이 될 수 있거든요. 결국 제가 지금 하고 있는 건 사실 누구나 할 수 있어서 너무 쉬운 거고 그렇기 때문에 효용이 있다고 생각해요. 발달 장애인들과 4년에 걸쳐 연극 워크숍을 해오면서 ‘연극은 어디서, 누가, 무엇을 했는지만 있으면 된다’고 설명해요. 가장 단순한 형태지만 그것만 있어도 연극이 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연극을 가지고 사회적 소수자들과 여러가지를 시도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기획하신 연극 중 거리 공연도 많아요. 아무래도 더 많은 사람에게 노출이 될 텐데, 그 부분을 염두에 두고 거리 공연을 시작한 건가요?

처음부터 거리 공연을 해야겠다 정하고 시작한 적은 없어요. 그때그때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은 장소에서 했는데, 거리 예술쪽에서 재미있게 보시고 그 다음 작업 기회를 주셔서 확장할 수 있었어요. 그 흐름이 ‘안산순례길’까지 이어진 것이고요. 배경이 거리가 되면 좋은 작업과 극장 안이 되면 좋은 작업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하려는 바는 결국 다 비슷하겠지만, 그 주제에 어느 정도 포커스를 둘 수 있는지, 또 어느 방식으로 전달하고 소통할 수 있는지에 대한 차이가 있더라고요. 익명의 대중을 만나는 것이 좋은 기획, 또는 이 공연을 선택해서 보러 오는 관객을 위한 기획에 따라 다른 거죠.

공연을 하면서 느끼는 긍정적인 면도 분명 있을 것 같아요.

제가 기획한 퀴어 공연을 본 지인이 개인적으로 커밍아웃을 했던 일이 기억에 남아요. 그리고 장애인분들과 하는 공연을 보러 오는 관객들이 공연 마지막에 이렇게 이야기할 때가 있는데요. ‘거리에서 비슷한 분들을 많이 봤는데 그 사람들이 발달 장애인인 줄 몰랐다, 저렇게 하면 소통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휠체어를 직접 다뤄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 공연을 통해 연습을 해볼 수 있었다.’ 굉장히 직접적인 반응이죠. 몇십 명 정도지만 그런 피드백이 오고 파급력이 조금이라도 느껴질 때,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연극 연습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한 건가요?

초반에는 거리에서 주로 무언가를 했어요. 거리에서만 하겠다는 건 아니었지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기회가 생겨서 자연스럽게 하게 됐죠. 그런데 그땐 거리 공연과 연극계가 명확하게 분리되어 있었어요. 거리 공연을 연극이 아닌 거리 예술로 묶으려고 하는데, 저는 그게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한번은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나 혼자 살 수 있는 집 짓기 프로젝트를 했어요. 그것도 다 연극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별로 ‘연극’으로 여겨지지 않는 것 같았어요. 연극 연습 프로젝트는 그런 부분에 대한 선언이었어요. ’지금까지 보고 듣고 경험해보니 이런 것도 연극으로 호명할 수 있겠다.’ 라고요.

선언으로 시작된 각 시즌의 주제는 어떻게 선정했는지 궁금해요.

처음에는 진짜 연습이라는 걸 해야겠다고 접근했어요. 제가 볼 땐 완전 연출가인데 연극계에서 아무도 연출을 안 맡기는 분에게 연출을 맡겼죠. <연출 연습-세 마리 곰>이라는 제목이었는데, 연극 공간에서 굉장히 위험한 일들이 계속 벌어져요. 그런데 결국 다치는 사람은 없죠. ’비극은 연극무대가 아닌 현실에 있다.’라는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었어요. 두 번째는 안산순례길 이후 어머님들과 친분이 생기면서 기획된 <연기 연습-배우는 사람>이에요. 그분들의 삶이 참사 이후 모든 게 변했지만, 사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일상의 삶이 있는 평범한 중년 여성이거든요. ’삶을 수행하는 것이 연기’라는 생각에 어머님 두 분을 초대해서 그분들이 그 시점에서 가장 하고 싶은 것을 배워가는 과정을 담은 연극이었어요. 그리고 <극작 연습-물고기로 죽기>의 경우엔 ‘성소수자의 나이듦’이라는 고민에서 시작되었는데요. 극본을 맡길 분을 찾다가 트랜스젠더로 쉰 살을 맞이하는 김비 작가님에게 대본을 부탁드렸죠.

실제 트랜스젠더가 쓴 스토리라 더욱 궁금하네요.

트랜스젠더를 포함한 많은 성소수자들이 여러 이유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일이 많잖아요. 작가님이 써주신 건 ‘주어진 삶을 다 살고 자연사하기 직전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남기는 유서’라는 이야기였어요. 나는 이제 떠나지만 남은 성소수자들에게 축복을 전한다는 내용이에요. 그리고 네 번째가 <관객 연습-사람이 하는 일>이었는데, 다양한 장애를 가진 여성들이 일상에서 실제로 경험한 차별 상황을 보여주고, 실제로 감정이입이 된 관객이 퍼포머로서 무대에 개입해 토론하고 싸워주는 거였죠. 가장 최근 작품이 모어라는 드래그 아티스트와 함께한 <번안 연습-로미오와 줄리엣 and more>예요. ‘발레리나’가 되고 싶어서 발레 학교에 진학했으나 결국 발레리나가 되지 못했던 드래그 아티스트의 이야기죠.

사실 제가 그냥 살다가 마주하는 어떤 사람들에 대해서 공부하고 더 많이 만나보다가 어느 순간 ‘작업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면 새로운 작업을 또 시작하는 것 같아요.

모든 스토리가 다 흥미로워요. 여섯 번째 프로젝트는 어떤 주제이고 언제쯤 공개될까요?

아직 정해진 건 없고요. 이런 걸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기본적인 리서치를 하고 있는 단계예요. 내후년 정도 공연화할 수 있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중간에 또 바뀔 수도 있고요(웃음). 사실 제가 살다가 마주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공부하고 더 많이 만나보다가 어느 순간 ‘작업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면 새로운 작업을 또 시작하는 것 같아요. 펠로우가 되었으니 천천히 꾸준하게 살피고, 만나고 살며 고민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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