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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식
사단법인 온기 대표

편지에 새겨진 글자만큼 피어나는 온기

‘사단법인 온기’의 목표는 이름에서부터 쉽게 드러납니다. 조금, 아주 조금만 더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것. 조현식 대표는 언제부터인가 우리 주위에 만연해진 우울감에 집중했습니다. 그들에게 마음을 털어놓을 곳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그는, ‘온기우편함’이라는 이름의 우체통을 설치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에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이 편지를 써서 부치면, 그를 포함한 ‘온기우체부’들이 한 글자씩 꾹꾹 눌러쓴 손편지로 답장을 보냅니다. 서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이지만 진심어린 공감이 크고 작은 우울감을 끊어낼 수 있다고 믿으면서요. 우리 사회의 마음돌봄 인프라와 심리적 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해 그는 오늘도 편지에 온기를 동봉합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사단법인 온기(이하 ‘온기’)의 사업을 소개해 주세요.

온기는 우울감 지속 완화를 목표로 활동하는 비영리 단체예요.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사업들을 운영하고 있고, 대표적인 것이 온기우편함이에요. 온기우편함은 사회 구성원 누구나 익명으로 고민을 보내면 손편지로 답장을 받을 수 있는 정서 지원 사업이에요. 우편함에 보내주신 고민 중에서 공개 동의된 편지를 ‘온기레터’라는 이름의 뉴스레터로 발행하기도 해요.

비영리 단체는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나요?

학교 다닐 때 앞으로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답이 바로 나오지 않아서 이런저런 활동을 해봤어요. 대기업 인턴으로도 일해보고 봉사 활동도 다양하게 했죠. 방과 후 돌봄, 야학으로 한글 가르치기, 루게릭 환우 돕기 같은 활동이었어요. 도움을 받는 분들 보면서 뿌듯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 공간에 있는 제가 많이 웃고 행복해하더라고요. 그걸 깨달은 순간, 누군가를 돕는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온기는 대학교 4학년 때 프로젝트로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어요.

바람대로 마음이 힘든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네요. 편지와 우편함이라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게 되었어요?

군대에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었는데, 책 내용 중 과거 인물이 편지에 고민을 적어 보내면 미래의 인물이 답장을 해주는 부분이 나와요. 책장을 넘기며, 어쩌면 이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우리 사회가 조금 더 따뜻해지려면 이런 동화 같은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요. 저 역시 가끔 우울한 감정을 느끼기도 하고, 힘든 일이 생기면 혼자 고민하고 해결하는 성격인데,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상대방에게 짐이 될까 봐 걱정스럽기 때문이거든요. 그렇다고 상담소를 찾아가자니 그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은 것 같고요. 저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누군가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우체통 도면을 그려 무작정 목공소로 찾아갔죠.

온기가 찾아낸 우울감 해결 방안은 ‘털어놓기’였군요.

맞아요. 털어놓기와 공감이죠. 우울한 마음에 공감을 전하는 사업이니, ‘우리는 왜 우울할까?’라는 질문에서부터 나아가보려 했어요. 우울감을 느끼는 데에는 구직 활동을 하며 겪는 막막함, 어려운 인간관계, 혹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 등 모두에게 다른 이유들이 있잖아요. 금방 사라지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아요. 우울감이 생긴 뒤 장기간 지속되는 게 더 큰 문제라고 느꼈어요. 혼자서 가슴에 쌓아둔 이야기를 펜으로 꾹꾹 눌러쓰며 다 털어놓고, 답장으로 비슷한 일을 겪은 누군가가 전하는 공감을 받아본다면 상황이 훨씬 나아질 것 같았어요.

첫 우편함을 기억하세요?

그럼요. 삼청동 돌담길에 온기우편함 1호가 있어요. 편지지와 봉투를 함께 비치해 고민 편지와 답장을 받아볼 주소를 적게 했죠. 서울시 허가를 받으려고 시청을 찾았고, 관련 부서의 주무관님과 한두 달 정도 기간을 두고 논의를 거쳤어요. 우편함을 설치하고 첫 주에 편지 50통이 모였는데, 그때 이 일이 정말 사회에 필요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차도, 사무실도 없던 때라 함께 시작한 친구들과 매주 카페에 모여 편지를 쓰고는 했어요. 프로젝트를 지속하기에 재정적으로 어려움이 생겨서 2년 정도는 IT 기획자를 겸하기도 했고요.

온기우편함의 핵심은 답장을 써주는 ‘온기우체부’라고 생각해요. 어떤 분들이 지원하는지, 어떻게 선정되는지 궁금해요.

온기우체부는 모두 자원봉사자분들이에요. 20대 대학생부터 70대 시니어까지 폭넓은 연령대로 구성되어 있고, 현재 인원은 약 800명이에요. 자격 조건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삶에서 한 번쯤 힘든 시기를 겪고 극복한 적 있는 분들이 지원을 해주세요. 지원서에는 자기소개, 최근 온기를 전했던 일, 지원 이유를 적는 난이 있고, 마지막 항목으로 과거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는 난이 있어요. 선정된 분들은 두 달간 교육을 받는데요. 편지를 다 쓰고 나면 운영위원회에서 검토 후에 피드백을 드려요. 편지 쓰고 피드백을 받고 수정하는 과정의 반복이죠. 교육 과정을 통과하셔야만 정규 온기우체부로 활동하실 수 있어요. 온기우편함에는 한 달에 약 2,000통의 편지가 들어오는데요. 온기우체부들은 편지 내용 중 본인이 경험한 일이거나 공감해 줄 수 있는 내용을 찾아 선별하고 답장해요. 온기우체부 중 30%는 온기우편함에 고민을 보냈다가 답장을 받은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는 것도 특별한 점이에요. 본인이 받은 위로를 또 다른 이에게 전해주는 거죠.

가장 중요한 원칙은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온기는 세상에 정답이 없다고 가정하기 때문에
‘이렇게 하세요.’ 같은 문구는 사용하지 않아요.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으니까요.
경험을 토대로 공감해 드리는 게 기본 바탕이에요.

말씀하셨듯이 마음을 다루는 일인 만큼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것 같아요. 편지 쓸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나요?

가장 중요한 원칙은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저희는 세상에 정답이 없다고 가정하기 때문에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는 하지 마세요.’ 같은 문구는 사용하지 않아요.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으니까요. 경험을 토대로 공감해 드리는 게 기본 바탕이에요. 또 하나는 편지 쓰는 데 들이는 시간인데요. 우편함에 고민을 보내주시는 것 자체가 큰 용기를 냈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그 용기에 진심으로 보답해 드리고 싶어요. 정성과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답장 한 통을 쓰는 데 보통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 걸려요.

온기우편함에 도착하는 편지 중에는 심각한 우울 증세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고요. 그런 경우 더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할 것 같은데, 어떻게 대처하나요?

고위험군 편지는 따로 분류해 두는 게 원칙이에요. 표현이나 단어 선택 하나하나에 더 신중해야 하기 때문에 심리상담사로 일하시는 분들이 답장을 써주시고요. 그다음은 치료의 영역으로 넘어가요. 전국의 정신건강센터로 연결해서 실제로 치료를 받으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있어요. 관련 앱도 구상 중이에요. 온기우편함에 고민을 보내고, 직접 심리상담센터나 정신건강센터를 예약하는 거죠. 저희에게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받으신 분들에게는 자연히 신뢰가 생길 거고, 온기라는 단체가 추천해 주는 곳이라면 조금 더 믿을 만하다고 여기실 수 있으니까요. 우울증 증상이 있을 때 가장 어려운 게 밖으로 한 발짝 떼는 일일 텐데, 온기가 앞서서 돕고 싶어요. 저 역시 다음 단계를 위해 상담심리 대학원을 준비하고 있어요.

요즘 들어오는 편지에는 어떤 내용이 많은가요?

요즘은 고립, 은둔 청년들의 편지가 가장 많아요. 2017년에 시작할 즈음에는 취업이 안 돼서 너무 힘들다는 내용이 많았는데, 요즘은 청년들이 취업 준비도, 아무것도 하기 싫고 집에만 있는다며 무기력함을 털어놔요. 특정한 사건이 있을 때도 관련된 편지가 많이 오는데요. 2년 전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을 때 한 희생자의 부모님께서 추모 공원에 설치된 우편함에 편지를 보내시기도 했어요. 그럴 때마다 온기가 사람들 일상 속 가까이에 있다는 걸 느끼고, 책임감도 더 생겨요.

온기우편함은 오프라인으로만 접할 수 있어서 편지를 쓰고 싶은 순간을 놓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런 점에 대한 고민은 없나요?

본인이 필요할 때마다 편지를 쓰시는 분들도 꽤 있지만, 앞으로 접근성을 좀 더 높여야 되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어요. 지금은 전국에 설치된 온기우편함을 통해 고민을 보내는 형태라면, 앞으로는 온라인이나 음성 녹음 등 더 편리한 방식으로 편지를 보내는 환경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일상에서 위로를 전하려면 접근성도 중요하거든요. 그러면서도 손 편지가 주는 의미는 쭉 가져가야 하기 때문에, 타이핑이 아니라 손 편지 사진을 찍어서 보내는 형태, 음성 녹음으로 편지를 보내더라도 답장은 손 편지로 드리는 형태가 좋을 것 같아요.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세상에 온기를 더해간다면 또다시 누군가에게 온기를 주는 사람이 될 테고, 더 따뜻한 사회가 되어간다고 믿어요.

온기 활동으로 이루어진 사회 변화와 개인적인 보람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현재 전국 73곳에 온기우편함이 있는데요. 영화관, 지하철역, 기차역, 카페, 도서관 등 일상적으로 접하기 쉬운 장소와 대학병원 암센터, 추모 시설처럼 위로가 필요한 장소에 설치되어 있어요. 앞으로도 온기우편함의 개수와 지역을 확장해 나갈 예정이고요. 한번은 한양대학교 연구팀과 함께 온기우편함 사업의 화폐 가치를 환산해 본 적이 있어요. 자체적으로 산식을 개발해 데이터를 냈죠. 예를 들면 온기우편함을 설치하는 일이 우리 사회의 마음 돌봄 인프라 구축에 대한 화폐 가치가 될 수 있어요. 또 온기우편함에 고민을 보내고 답장을 받았을 때 우울감이 얼마나 완화됐는지에 대한 부분을 체크하고, 심리 상담 초진 비용을 산식에 대입하면 화폐 가치가 측정되는 거죠. 2021년부터 23년까지 3년 동안, 그렇게 28억의 가치를 창출했다는 결과를 얻었어요.
개인적인 보람은 두 가지인데요. 첫째는 프로젝트로 시작한 이 일을 꽤 긴 시간 지속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직원분들, 자원봉사분들과 같이 우리 사회의 우울감을 완화하는 데 일조한다는 것, 따뜻함을 전하는 일을 꾸준히 해나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정말 뿌듯해요. 한창 일이 힘들 때는 멀리 내다볼수록 지치더라고요. ‘1년 후에는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조차 버거워서 오늘 하루만 최선을 다하자, 매일 다짐했어요. 그렇게 여기까지 온 거라서 지금까지 유지해 온 저를 칭찬해 주고 싶어요. 둘째는 답장을 받은 분들이 보내주시는 피드백을 받을 때예요. 본인이 얼마나 위로를 받았는지 진심을 전해주시고, 편지를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힘들 때마다 꺼내 본다고 해주세요. 온기의 슬로건이 “한 사람을 돕는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지는 않지만, 그 사람이 사는 세상은 바뀔 수 있다고 믿습니다.”예요. 세상을 바꾸는 건 너무 거대한 일이지만 한 사람에게 집중하다 보면 그리 큰일은 아니거든요.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세상에 온기를 더해간다면 또다시 누군가에게 온기를 주는 사람이 될 테고, 더 따뜻한 사회가 되어간다고 믿어요.

그동안의 노력이 결실을 보아 브라이언 펠로우로 선정되셨는데, 이번 선정이 온기 활동에 있어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먼저,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온기를 멈추지 않고 꾸준히 나아간 걸음과 우리 사회의 정신 건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 온 시간을 인정받은 기분이에요. “여기까지 버텨줘서 정말 고생 많았어요.”라고 이야기해 주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요? 또 앞으로 온기가 치료의 영역으로 범위를 넓힐 기회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도전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기존 온기우편함을 통해 예방 영역에 집중했다면, 브라이언 펠로우에 선정되면서 치료의 솔루션을 기술과 접목해 개발해 볼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해요.

사회의 마음 돌봄 인프라 및 심리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라고 하셨죠. 온기의 다음 스텝은 무엇일까요?

온기우편함을 무브먼트로 만들 거예요. 지금은 모든 우편함을 저희가 관리하고 운영하는데, 앞으로는 우편함 사업을 매뉴얼화해서 이 사업에 관심 있는 조직이 있다면 전국 어디에서나 우편함을 운영할 수 있게 시스템을 구축하고 싶어요. 또 ‘온기우편함 이니셔티브’라는 이름으로 온기의 솔루션을 해외로 넓혀갈 준비도 하고 있어요. 앞서 치료로 연결되는 앱을 구상 중이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온기 안에서 상담까지 닿는다면 가장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집단 상담부터 시작해 보려고 해요. 비슷한 고민을 가진 고위험군 분들이 모여 상담을 받는 환경을 만들고, 우울증을 직접 해결해 나가고 싶어요. 그리고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인데요. 현대인의 정신 건강 문제는 같은 분야에 있는 단체들이 모여서 해결해야 한다고 봐요. 온기에 예방의 솔루션이 있는 것처럼, 치료와 회복의 솔루션을 가진 조직들이 있을 거예요. 각 영역에서 활동하는 분들과 함께하는 정신 건강 문제 해결의 장을 만들고 싶어요. 본인의 사업을 잘 꾸려나가는 것이 리더의 당연한 덕목이라면,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을 모으고,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것 역시 리더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그런 리더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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