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철 펠로우는 충남 홍성의 작은 농촌마을에서 다양한 구성원을 돌봅니다. 발달장애인의 자립을 위한 농장 ‘꿈이자라는뜰’의 대표일꾼을 맡고 있어요. 장애가 있어도 노인이 되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농촌을 설계하는 최문철 펠로우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서로 어울리고 연결되고 성장하는 공간으로서의 농장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Q.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충남 홍성에 살고 있는 최문철이라고 합니다. 농촌 발달장애인의 자립을 돕는 배움터 ‘꿈이자라는뜰’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3년 전부터는 의료조합 일도 같이 하고 있고요.
사회적 약자이자 생산성이 낮은 장애인과 노인이, 쇠퇴해가는 농촌 마을에서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제가 하는 활동들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인 것 같아요. 농사와 의료와 돌봄을 연결하여 지역사회 통합 돌봄 모델을 만들고 싶습니다.
Q. 농촌의 돌봄 시스템을 고민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사회초년생 시절, 온라인 마케팅 회사에서 매일 야근을 하는 직장인이었어요. 급여를 받는 건 좋았지만 공허함을 느꼈어요. 나에게 돈을 벌어주는 일보다는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회사를 관두고 이주 노동자 지원 단체에 들어가 활동가로 일하며, 내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 고민하던 무렵에 충남 홍성에 왔어요. 생태적이고 건강한 삶에 대한 갈증 때문이었죠.
농촌에 오기만 하면, 농사를 지어 자립하고 마을 안에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갈 수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막상 농사를 배워보니 말처럼 쉽지 않은 거예요. 농사로 먹고사는 일은 기존의 농민들에게도 어려운 일인데 저는 자산도, 체력도, 기술도 한없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다 농사 대신 ‘농사와 교육을 연결’하는 일을 제안받았어요. 마침 지역에서 특수교육 대상 학생에게 직업 교육으로 농업을 가르치자는 움직임이 있었거든요. 학교에 계신 특수교사 선생님들은 농업에 대해 잘 모르고, 저는 2년간 농사와 마을살이를 배우며 나름의 연결점이 있었기에 학교와 마을을 연결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 일이 ‘꿈이자라는뜰’의 시작이었어요. 농촌에서 살아가는 장애인의 취약성을 직시하는 일을 통해, 마을의 시스템을 돌아보는 계기를 맞았습니다.
Q. 최문철 님이 바라본 농촌의 문제는 무엇이었나요?
삶의 질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거였어요. 물론 도시에서도 장애인이나 노인은 어려움을 겪겠지만, 농촌에서의 삶은 더 열악합니다. 교통도 불편하고 복지관을 한 번 나가는 것도 쉽지 않죠. 어떤 기회가 왔을 때 선택의 폭이 굉장히 좁아요.
발달장애인들은 학령기가 끝나면 집에서 거의 나오지 못합니다. 대부분 고립되고 방치돼요. 혼자서 직업활동을 하거나 마을을 활보하는 모습을 거의 볼 수가 없죠. 함께 꿈이자라는뜰을 시작한 특수교사 선생님들은 매년 백수를 키워낸다는 생각에 자괴감도 느끼셨다고 해요. 제자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직업을 갖지 못하고 지역사회와 단절되는 모습을 10년 넘게 봐왔으니까요.
노인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농촌 지역의 고령화는 도시보다 훨씬 심각한데, 노인의 의료복지 여건과 접근성은 오히려 악화하고 있거든요. 도와줄 사람이 없으면 약 한번 타러 가기 힘든 게 현실이에요. 내가 나이 들어 노인이 되어도, 갑작스럽게 장애가 생겨도 건강하게 연결되어 살아갈 수 있는 마을을 만들자는 마음으로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Q. 문제 해결을 위해 그간 어떤 활동을 해오셨고, 어떤 성과가 있었나요?
농촌 발달장애인의 고립 문제 해결을 위한 농장, 꿈이자라는뜰의 설립을 도왔고 지금도 일꾼으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꿈이자라는뜰은 발달장애 청소년을 위한 교육농장이에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방학을 제외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텃밭 수업을 진행해요. 그렇게 매년 30회씩 전 학령에 걸쳐 꾸준히 농사를 함께 짓습니다.
이 과정에서 꿈이자라는뜰은 학교 밖과 마을 안의 중간 거점이에요. 특수교사는 농사가 낯설고, 마을 교사는 장애와 교육이 낯설기 때문에 이들이 지속적으로 만나 함께 공부하고 교육과정을 상의하도록 돕습니다. 초중고 12년을 연결하면서, 학교의 예산 및 정책 변화와 교사의 근무지 이동 등으로 공백이 발생하지 않게끔 지속성을 담보하는 역할도 합니다. 초중고 내내 동안 꿈이자라는뜰과 함께 하고 졸업한 발달장애 청년은 총 34명이고, 지금은 11명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교육에 더해 일자리도 만들어냅니다. 하나둘 동료가 늘어나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일하는 돌봄 농장을 시작했어요. 현재 5명의 비장애인 일꾼과 2명의 장애인 일꾼이 꿈이자라는뜰에서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마을교사 역할을 하고 있는 농장의 비장애 일꾼들이 누구였는지 살펴보면, 경험과 일자리가 필요했던 청년과 여성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꿈이자라는뜰의 처음은 장애인의 성장을 돕는 곳으로 시작했지만, 돌이켜보면 비장애인 일꾼에게도 안전한 일터였고 성장의 발판이었습니다.
산업의 관점에서 수익성이 낮은 농사와 생산성이 낮은 장애는 서로 연결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교육의 관점에서 농사는 ‘교육과 일과 일상’의 연결고리가 됩니다.
Q. 농촌 문제를 해결하려는 다른 접근과 꿈이자라는뜰의 차별점은 무엇인가요?
일단은 농사를 솔루션으로 삼았다는 게 가장 특별한 지점일 것 같습니다. 사실 장애와 농사는 좀처럼 연결 지을 수 없는 게 맞거든요. 일반적으로 농업은 농산물을 생산하고 팔아서 돈을 버는 일이잖아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현실적인 농업의 상황을 보면 다른 산업군에 비해 수익성이 높지는 않죠. 또 장애는 효율이나 생산성을 기대하게 하는 요인은 아니잖아요. 생산성이 높지 않은 장애와 수익성이 높지 않은 농업의 만남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입장에서 보면 절대 매칭이 되지 않는 지점인 것 같아요. 마이너스와 마이너스죠.
그런데 이게 교육이나 성장의 측면에서 접근하면 달라져요. 농사는 매우 전인적인 과정입니다. 지식도 있어야 하고, 몸에 있는 모든 감각들을 열심히 활용해야 합니다. 사람들과 대화도 중요하고 인내와 끈기도 필요하고요. 저는 ‘농적 자극’이라는 말을 쓰는데요. 농사짓는 일은 다양하고 생생한 자극을 맛보는 일이고, 건강하고 사회적인 자극을 지속적으로 공급받는 통로가 돼요. 장애인이 농사를 지어서 생산량을 크게 늘리지는 못해도, 그 시간을 통해 인간으로서 성장하는 경험은 분명히 가져갈 수 있는 거예요.
두 번째로는, 청소년을 위한 교육 과정부터 시작해서 성인을 위한 일터까지 연결된다는 점입니다. 발달장애인 청소년이 성인 장애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교육’과 ‘일’과 ‘일상’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 저희의 목표거든요. 처음에는 직업교육을 위해 농사를 가르쳤지만, 이제는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술을 익히는 과정으로 농사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장애인과 노인의 어려움은 겹쳐 있습니다. 장애인은 소수지만 한 발 앞서 문제를 드러내 주고, 누구나 겪게 될 노화는 나의 문제를 우리의 문제로 바꿔냅니다.
Q. 농촌의 의료 공백을 줄이기 위한 활동도 하고 계시죠?
2015년 의료협동조합을 설립하는 과정에 참여했는데, 2018년부터는 꿈이자라는뜰에서 의료협동조합으로 활동 영역을 더 넓혔습니다. 의료협동조합은 1차 의료기관과 조합 사업부로 구성되어있어요. 의료기관에는 가정의학과 의사, 간호사, 물리치료사가 상주하고 조합부에는 행정·회계를 담당하는 일꾼과 사회복지사가 함께 합니다. 의료조합 조합부의 사무국장을 맡고, 1년이 지난 시점에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습니다. 사회적기업 일자리 지원사업을 통해 고용인원도 5명에서 9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우리동네의원을 찾는 환자의 절반 이상이 60세 이상 고령자입니다. 어르신들에게 ‘가장 가까운 주치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어요. 마을과 집으로 찾아가는 방문진료도 지속하고 있습니다. 의료소비자에서 건강의 주체로 성장하는 생애 주기별 건강교실, 이웃에게 식재료와 안부 꾸러미를 배달하는 조합원 자원활동, 사회적 농업과 어르신 돌봄을 연결하는 활동 등 건강증진사업과 돌봄 사업 분야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주체들의 협동으로 당사자의 성장을 돕는 연결고리를 만들고, 당사자를 둘러싼 삶의 공간을 안전한 공유지로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꿈이자라는뜰과 의료조합은 닮아 있습니다.
Q. 최문철 님이 꿈꾸는 일상은 어떤 모습인가요?
장애가 있어도 나이가 들어도, 지금 살고 있는 이곳에서 계속 건강하게 즐겁게 사람들과 어울려서 살아가는 게 당연한 일상이요. 우리가 살 공간을 건강하게 해 줄 ‘공유지’가 점점 더 단단해졌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