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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석
청소년성소수자지원센터 띵동 대표

차별과 혐오에 맞서는 연대의 힘

정민석 펠로우는 청소년 성소수자, HIV 감염인과 연대하며 그들이 겪는 차별과 혐오로 인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있습니다. 위기에 처한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계속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2015년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을 설립했습니다. 띵동과 함께,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의 프로젝트 매니저로서 HIV 감염인의 인권 증진과 사회적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기획하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띵동, 초인종을 연상케 하는 경쾌한 소리의 이름이네요. 어떤 뜻을 품고 있나요?

띵동은 레즈비언들이 서로 알아볼 때 쓰는 일종의 은어였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띵동을 찾는 모든 청소년 성소수자를 반갑게 환영하겠다는 의미도 담은 이름이죠.

청소년들이 찾는 곳이라 그런지 사무실이 아늑하면서도 활기찬 인상을 주네요. 청소년을 위한 다양한 물품이 마련되어 있기도 하고요.

그런 분위기를 내려고 노력했어요. 아늑한 곳에 앉아 편하게 상담도 받고 쉬다 갈 수 있는 공간이에요. 책장에 모아둔 퀴어 만화나 소설을 마음껏 읽을 수도 있고 필요한 생활 물품들을 사용할 수 있어요. 이 공간이 30평 정도 돼요. 밖은 외롭고 힘들어도 이 30평 안에서만큼은 따뜻하고 함께하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공간을 꾸렸어요.

성소수자 중에서도 청소년에게 주목하신 이유가 궁금해요.

사람들은 대부분 생애 주기 중 청소년기에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알아가는 과정을 거쳐요. 저 역시 그랬고요. 혼란스러운 시기지만, 주위의 든든한 어른 혹은 친구의 지지를 얻는다면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성소수자를 환영하지 않는 분위기의 사회에서 이러한 지원을 얻는 것이 가장 어려운 문제죠. 저는 2007년부터 직장에 다니면서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만나기 시작했어요. 토요일마다 ‘무지개 놀토반’을 운영하며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모색했는데, 모이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하는 아이들에게 보다 지속 가능한 만남과 응원의 장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2013년부터 모금을 받기 시작했고, 결정적으로 2014년 아름다운재단 인큐베이팅 사업에 선정되어 2015년 띵동의 문을 열게 되었네요.

오랜 고민의 결과물인 공간이네요. 청소년 성소수자가 띵동을 처음 찾는 순간부터 함께하는 전반적인 과정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대다수 청소년들은 카카오톡을 통해 띵동의 문을 두드려요. 상담을 원한다면 상담 신청서를 작성한 뒤에 나이와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간략히 들려주면 상담에 대한 동의를 받고 본격적인 상담 과정에 들어가죠. 전화, 방문, 줌 미팅으로 상담을 선택할 수 있는데, 서울에 있는 청소년들은 최대한 대면 상담을 진행하려고 해요. 내담자의 상황에 따라 상담 주기는 유동적으로 잡는데요, 위급한 경우에는 출장을 가는 경우도 있어요. 상담은 38가지로 나눈 유형에 맞춰 진행돼요.

38가지라니, 상담 유형이 꽤 세세하게 나뉘어 있네요.

상담 내용을 바탕으로 정신 건강, 가족의 학대, 탈가정, 트랜지션(성전환), 진로 등 청소년 성소수자라면 충분히 겪을 만한 여러 어려움들을 구분했어요.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상담 유형은 정신 건강이에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스스로 혼란스러워하는 경우가 가장 많죠. 트랜지션도 상담 청소년 절반 정도의 비율을 차지해요. 트랜스젠더 롤 모델이 많지 않고, 비슷한 또래 친구들을 찾기 어렵다 보니 상담을 오는 경우가 많아요. 성별을 바꾸는 문제이니 의학적인 정보도 필요하고요. 트랜스젠더 청소년들을 위한 다양한 차원의 비전을 제시해 주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스무 살이 되면 학교를 졸업하듯, 띵동에도 졸업의 개념이 있나요?

비슷하게 띵동에서는 ‘종결’이라고 표현해요. 저희는 19세까지의 청소년을 주로 상담하지만, 성인이 된 청소년들을 이어서 만나는 경우도 있어서요. 종결은 대부분 내담자의 변화에 맞춰 서로 협의하에 끝을 맺는 편이에요. 때론 자신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 놓인 친구들에게 도움을 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며 종결하는 경우도 있고요. 그런 모습에 저희 활동가들이 더 큰 보람을 느껴요.

지금까지 몇 명의 청소년들이 띵동을 찾았나요?

띵동은 거의 4,000명에 육박하는 청소년 상담 기록을 가지고 있어요. 모든 기록은 잘 정리되어 있는데, 이 데이터가 저희 무기예요. 상담 내역을 전부 외부에 공개할 수는 없지만 유의미한 상담 기록은 내담자와 상의하거나 추가 인터뷰를 통해 세상에 공개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렇게 인터뷰집을 만들었죠. 자신과 비슷한 상황을 겪고 이겨낸 또래의 이야기는 신규 상담자에게 큰 힘이 되거든요.

문제를 직면하고 해결하는 사람은 당사자예요. 저희는 갈피를 잃은 청소년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고, 직접적인 해결법을 제시하기보다는 그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을 주는 사람들이지 않을까요?

상담 과정에서 민석 님과 띵동의 상담사분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결정을 내려주지 않는 것이요. 문제를 직면하고 해결하는 사람은 당사자예요. 저희는 갈피를 잃은 청소년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고, 직접적인 해결법을 제시하기보다는 그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을 주는 사람들이지 않을까요?

8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띵동을 운영하셨잖아요. 그동안 크고 작은 변화도 있었을 거고요.

벌써 8년이나 됐네요. 다른 청소년 기관들이 띵동을 안다는 것을 고무적으로 생각해요. 정부 지원을 받는 청소년 센터, 지원 기관에서 일하시는 선생님들이 띵동을 알고, 더 나아가 저희 도움이 필요할 경우 협력 요청을 하세요. 반대로 탈가정한 띵동 내담자에게 저희가 도움을 주기 어려울 경우 신뢰하는 기관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고요. 띵동에 후원하시는 교사분들이 80명이 넘어요. 학교 차원의 청소년 성소수자 상담에 도움이 되도록 저희가 상담 프로그램 자료를 보내드려요. 띵동의 움직임에 기꺼이 발맞춰 주시는 선생님들이 많이 계셔서 정말 든든해요.

사무실에 비치된 여러 교육·상담 자료를 둘러봤는데요. ‘청소년 성소수자 어떻게 만날까’라는 이름의 책자에 눈길이 갔어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늘 새로운 과제에 직면하게 돼요. 상담을 이어오다 보니 가족, 학교, 다른 청소년 지원 기관에서 연락이 오더라고요. 청소년이 저희와 만나는 시간은 하루 몇 시간이고, 나머지 일상은 가족, 또래 친구들과 보내야 하잖아요. 청소년 스스로 자립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변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도 정말 중요하거든요. 성소수자 자녀를 둔 학부모, 성소수자 친구를 가진 청소년 등 상담의 영역을 확장하고 이를 체계화하고 있어요.

저희끼리 상담실에 고립되어 이야기만 나눈다면 어떻게 세상이 바뀔까요? 저희는 연대를 통해 쌓은 근거와 힘을 무기로 사회 변화를 만드는 캠페인이나 현장에 직접 참여해 목소리를 내고 있어요.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 활동을 병행하고 계시기도 해요. 두 단체 모두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을 모아 서로 연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요. 민석 님께 연대란 어떤 의미인가요?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고 스스로 상처 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직면한 문제들이 나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 내가 문제인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려면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는 힘이 필요해요. 모여서 서로 이야기를 들어주고 지지하는 것만으로도 이런 힘을 기를 수 있다고 믿어요. 두 활동의 대상은 다르지만 본질적으로는 비슷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일상생활을 살며 주위에서 청소년 성소수자와 HIV/AIDS 감염인을 찾기는 쉽지 않아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힘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거든요. 연대가 중요한 이유는 목소리를 내는 힘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에요. 사람들 인식을 바꾸고 법과 제도를 바꾸기 위해서는 근거가 있어야 해요. 저희는 상담과 연대를 통해 그 근거를 넘치도록 쌓아왔어요. 저희끼리 상담실에 고립되어 이야기만 나눈다면 어떻게 세상이 바뀔까요? 저희는 연대를 통해 쌓은 근거와 힘을 무기로 사회 변화를 만드는 캠페인이나 현장에 직접 참여해 목소리를 내고 있어요.

띵동의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해지네요. 상담의 영역을 넘어 실질적인 지원과 변화에 대해 고민하고 계신 것으로 보여요.

띵동의 상담과 지원 활동을 통해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겪는 문제를 구체적으로 알게 됐어요. 특히, 자신의 정체성이 의도치 않게 알려져서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학교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청소년 성소수자가 많았는데요, 저희가 대안 학교나 직업 전문 학교를 소개해 보려 했지만 잘 연결되지 않았어요. 청소년 복지, 교육 현장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은 거죠. 상담을 주력하는 기관으로 출발한 띵동의 다음 스텝을 고민하던 찰나에, 학업이나 진로에 대한 방향성을 생각해 보게 되더라고요.

궁극적으로는 대안 학교를 꿈꿔요. 이를 위해, 지금은 작은 교육 공동체에서 출발하는 그림을 그려보고 있어요. 학생들끼리 같이 모여 책을 읽거나 수험 공부를 하고, 띵동에서는 검정고시를 서포트해 주거나 대안적인 교육을 제공하는 거죠. 기존엔 상담 전문가분들을 주로 만났다면, 이제는 교육 전문가들을 만나려고 하고 있어요. 이러한 사람과 환경이 모이고 이어졌을 때 아주 작은 학교의 모습을 띄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2024년은 준비 작업에 착수하는 단계가 될 거예요. 개인적으로는 조언을 구하기 위해 서울에 있는 모든 대안 학교를 직접 방문해 볼 계획입니다. 꽤 길고 쉽지 않은 과정이 될 것 같아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누구나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이어갈 수 있는 교육 환경을 만드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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