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영 펠로우는 스스로를 독립 창작자라 인식합니다. 장애인의 상황과 의견을 대변하는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몇 해 전부터는 장애와 관련된 공연 예술을 기획하고, 몸으로 표현하는 워크숍을 진행하며, 글 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회적인 편견으로 인해 배제된 사람들과 그들의 삶을 사회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특유의 열정으로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시고 계신데요, 요즘엔 어떤 일상을 보내나요?
작년까지는 매우 어수선한 일정 속에서 살았는데, 최근에 약간 루틴이 잡혔어요. 가을에서 겨울은 주로 글 쓰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책을 준비하는 것도 있고, 연구 논문을 쓰기도 해요. 학술적인 담론 내에서 제가 가진 문제의식이나 고민을 다루는 것도 중요한 훈련이거든요. 간혹 외부 강의를 나가거나 청탁 받은 원고를 쓰기도 하고요. 봄에서 여름은 공연 시즌이에요. 그때는 거의 연습실에 있어요.
변호사 업은 완전히 그만두신 건가요?
올해부터 사실상 그만뒀어요. 작년까지는 변호사 활동을 하긴 했지만, 소송을 맡지는 않았어요. 그건 올인하여 의뢰인을 책임져야 되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주로 자문이나 의견서 내는 업무를 했죠. 올해부터는 이제 그 작업도 하지 않고요.
그렇게 바쁜 와중에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시는 동기 부여는 어디서 얻는지 궁금해요.
사람들에게 관심 받는 걸 좋아해서 그런 것 같은데요(웃음). 정확히는 저도 모르지만, 스스로 이해하는 바는 이래요. 저는 어린 시절 장애 때문에 사회에서 거의 격리돼 있었어요. 하지만 자기표현의 욕구는 강한 아이였던 것 같아요. 그걸 표출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자라서 제 내면에 쌓인 게 많았는데 차츰 사회가 변하면서 기회를 얻고 학교에 가서 배울 수도 있었어요. 저한테 굉장히 즐거운 일이었죠. 하지만 제 안에는 늘 근본적인 무엇인가가 비어있다고 생각했는데요. 변호사로 사는 것도 사회적 책임 같은 측면에서 굉장히 의미 있고 생계도 해결해 주는 좋은 일이지만, 아주 근원적인 욕망이나 지향과는 딱 맞지 않았던 것 같아요. 사실 조금은 늦게 기회가 온 거죠. 지금까지의 시간이 좀 아깝다는 생각도 들어요.
조금 더 일찍 이 활동들을 시작했으면 하는 아쉬움인 건가요?
맞아요. 물론 무용수로 60~70대까지 활동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제가 가지고 있는 동시대적인 감각이 있을 거잖아요. 그게 60살이 되어도 똑같이 유지되지는 않을 테니까요. 조금이라도 그런 동시대성을 가지고 있을 때 더 활발히 활동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요.
몸을 사용하는 무용수로서의 시작이 궁금해지네요.
대부분의 인생이 그렇지만 엄청 드라마틱한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조금조금 한 단계씩 다가간 거죠. 기억나는 공연이 있긴 한데요. 변호사로 근무할 때 한국에서 장애인 무용 워크숍이 열린다고 해서 휴가를 내고 참석한 적이 있어요. 독일과 일본 등에서 온 무용팀들의 워크숍이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공연 예술에는 관심이 있었지만, 무용에 크게 관심은 없었어요. 그런데 그 워크숍이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때 시작이 된 거군요?
맞아요. 그 뒤 계속 관심을 갖고 있다가 2017년에 풀타임 근무를 그만두고, 일본 안무가분에게 찾아갔어요. 거기서 3주 정도 머물면서 매일 워크숍에 참여했죠. 그분 팀에 속한 무용수들은 다 비장애인인데, 장애인 무용수들과 작업한 경험이 많았어요. 제 신체적인 움직임에 매우 익숙하게 열려 있었다는 점에 매료되었고, 굉장히 편안했어요. 그러면서 ‘난 연극이 아니라 무용을 하고 싶구나.’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렇게 활동 분야를 점점 옮기다가 마침내 2~3년 전부터는 ‘나는 공연자.’라고 스스로 정체성을 바꾸기 시작했죠.
정말 열정적인 것 같아요. 워크숍에 한 번 참여했다가 일본까지 찾아가기가 쉽지는 않잖아요. 용기도 필요했을 테고요.
용기가 필요했고, 여러 운도 따라줬어요. 마침 그분이 계시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제 친구가 살고 있었거든요. 거기 머무르며 워크숍에 참여할 수 있었죠. 사실 얼마 전 그 팀을 만났어요. 6년 전의 무용수들 전부 똑같이요.
무용이라는 행위와 그에 관련한 워크숍은 자신의 몸을 정당화하기 어려운 사람들도 신체를 다르게 볼 수 있게 만드는 것 같아요.
서로 엄청난 교감을 하셨군요. 그 이후로 한국에서 직접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는데, 장애인 관련된 인식의 변화가 느껴지시나요?
현대 사회에서는 장애를 가진 시민들이 자신의 시민권이나 법적인 권리에 대해서 의심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하지만 ‘내 신체가 다른 사람과 똑같아, 다양성일 뿐이야.’라고 확신하고, 자신의 신체를 부정하지 않을 수 있냐고 묻는다면, 그건 쉬운 문제는 아닐 거예요.
오히려 개인이 내면적으로 생각했을 때요?
네. 그런데 무용이라는 행위와 그에 관련한 워크숍은 자신의 몸을 정당화하기 어려운 사람들도 신체를 다르게 볼 수 있게 만들어요. 물론 내가 내 몸을 다르게 생각한다고 해서 케이팝 스타의 몸통이 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 신체가 가진 미적인 가능성과 정치적인 급진성 같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실제로 그런 경험을 했고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몸을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인식하는 기회.’ 이것이 제가 지향하는 워크숍의 목표예요. 그리고 더 나아간다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실제 살아 있는 신체를 가진 존재로서 가까이 만나 서로의 몸의 차이에 익숙해지는 경험이 있으면 좋겠죠.
맞아요. 하지만 일상에서 그렇게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아요. 만남의 기회도 적고요.
잘 없죠. 저는 개인적으로 촉각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예를 들면, 휠체어를 밀 때 휠을 만지게 되잖아요. 그러면 서로의 몸과 몸이 닿지 않더라도 어떤 움직임이나 진동을 공유하게 되죠. 촉각적 경험은 우리가 어떤 사람을 만날 때 굉장히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특정한 사람들에게는 시각이나 청각적인 경험이 편리할 수 있어요. 겉모습이 사회적인 편견에서 크게 이탈하지 않은 사람이나 아주 세련된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군가와 만나기가 더 쉽겠죠.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제한적일 수 있거든요. 그런데 촉각은 좀 달라요. 중증 장애를 가진 사람이라도 살아 있다면 촉각은 느낄 수 있거든요. 촉각은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이니까요.
더 나아간다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실제 살아 있는 신체를 가진 존재로서 가까이 만나 서로의 몸의 차이에 익숙해지는 경험이 있으면 좋겠죠.
배리어프리(Barrier-free) 공연을 기획할 때도 촉각에 집중하나요? 가장 집중하는 포인트가 궁금해요.
배리어프리도 다양한 신체적 특성을 가진 관객이 그 공연을 깊이 만났으면 좋겠다는 목표를 위한 하나의 수단이거든요. 배리어프리가 이념적 목표라기보다는 어떤 관객 혹은 그 공연의 참여자가 실제로 다른 관객이나 무대 위의 퍼포머를 어떻게 잘 만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인 것 같아요. 이를테면, 시각을 사용하지 않고 청각이나 촉각적 경험만을 이용하여 공연을 한다면 청각 장애인분들은 참여하기가 쉽지 않겠죠. 하지만 저는 그런 공연도 가끔 추구할 만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워크숍에서는 가끔 그런 시도들을 해요. 공연마다 그때그때 깊이 있게 만나고자 하는 관객이 있고, 그 관객을 염두에 두고 특정한 감각을 증폭시켜서 만나는 걸 추구하죠.
원영 님의 활동들이 배제를 사라지게 하는 데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요.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가요?
제가 몇 년 전부터 하고 있는 활동들이 지속 가능하도록 구조를 만들고 싶어요. 지금까지는 생업 활동을 해야 했기 때문에 집중하기 힘들었던 부분도 있어요. 공연 작업이 경제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분야잖아요. 요즘에야 대우가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최저 생계비 이상이 안 되죠. 그런데 이번 펠로우십을 통해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작업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어요. 창작자로서도 더 좋은 작업을 만들어 내는 역량을 길러야 됨과 동시에 그런 창작이 가능한 팀을 만들고 싶어요. 예정된 워크숍 프로그램도 병행하면서요.